더 북한 시론

북한은 최소한 계약만은 지켜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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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1면

북한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대북 결의에 대해 강경하게 맞서 19일의 3차 개성공단 남북접촉이 매우 주목된다. 비록 개성공단 현안이라는 제한된 의제를 논의하는 자리이지만 외부세계와 북한 간에 유지되고 있는 유일한 대화채널이기 때문이다. 남북한 모두 개성공단 사업만은 정치군사적 현안과 분리해 대응하겠다고 밝히고 있어 실낱같은 희망을 갖게 한다.

북한은 최근 북측 근로자의 임금을 현재의 약 4배인 월 300달러로, 토지임대료를 이미 납부한 금액의 31배 수준인 5억 달러로 각각 인상해 달라고 요구했다. 토지이용료 유예기간 단축, 세금인상 등도 제시했다. 얼핏 보면 어느 것 하나 수용하기 어려운 요구들로 읽힌다. 하지만 이번 요구는 북한 내 강경세력들이 남쪽 당국에 대한 정치적 불만을 최대치 요구사항에 담아 표출하려 한 측면이 강해 보이는 데다 추가 접촉에 합의했다는 점에서 협상의 여지는 있어 보인다.

우선 임금인상 요구 대목은 타협점을 모색하기가 상대적으로 용이한 부문이다. 북쪽 경제부문 실무자들은 평소 기존 평균임금 기준으로 20∼30% 수준의 인상은 필요하다는 내부 가이드라인을 갖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지금은 연간 임금인상률이 5%로 묶여 있다. 따라서 북한이 우리 근로자의 신변안전 보장, 3통(통행·통신·통관), 그리고 노무관리의 자율성 등 북한 근로자의 생산성 향상을 도모하기 위한 기업 경영환경을 점차 개선해 준다면 우리 기업들의 전향적인 임금인상 검토가 이뤄질 수 있다. 특히 북한 근로자의 학력과 경력에 따른 차등임금 지불이나, 생산성 향상 실적에 따른 성과급 임금제도 등은 수용이 가능하다. 따라서 북한은 근로자 모두에게 일률적으로 300달러를 지불하라고 요구할 것이 아니라, 우리 기업들의 이런 요구사항을 수용하는 것이 오히려 이익이 될 수 있다. 경우에 따라서는 300달러 이상을 받는 근로자도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토지임대료 5억 달러 인상 요구는 개성공단기업협의회가 기자회견 성명서를 통해 밝혔듯이 입주 당시 남북 당국에 의해 보장된 제반 법규정 및 계약조건을 준수하는 차원에서 철회돼야 한다. 남측 일각에선 북한의 이런 주장에 대해 6·15, 10·4 남북정상선언 관철을 압박하기 위해 정치와 무관한 남쪽 입주기업들과 근로자들을 볼모로 삼아 대가를 요구하는 것으로 오해하고 있다. 더구나 기존계약을 재검토하는 것은 북한의 투자환경에 치명적인 약점으로 작용할 수 있다. 상호 협의가 전제돼 있는 토지임대차 재계약 등을 일방적으로 개정할 경우 대외신인도를 크게 훼손시켜 소탐대실할 수 있다. 지금은 최소한 계약은 지킨다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더 중요하다.

북한 내 강경세력들은 궁극적으로 북한체제에 위협적 결과를 초래할 수 있는 것이 개성공단 폐쇄임을 알아야 한다. 북한에 대한 국내외 투자자들의 신뢰를 완전히 저버릴 경우 앞으로 핵협상 등이 진전되더라도 실추된 신뢰를 회복하기가 쉽지 않아 최소한 10년간 경제재건이나 이를 토대로 한 성공적인 후계체제 구축은 기대하기 힘들 수 있다. 이런 맥락에서 개성공단을 살리는 일은 북한의 보다 나은 현재와 미래를 위해서도 중요하다.

북한은 당장 ▶장기간 억류 중인 근로자 문제 ▶출입·체류 제한조치 철회 등 개성공단 발전을 위한 현안 해결에 적극 나서야 한다. 이는 향후 북한이 원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식량·비료 지원 등 인도적 지원문제를 논의할 수 있는 최소한의 필요조건이다. 또 지금 꽉 막혀 있는 국내 많은 대북 지원단체의 활동을 재개시키는 지름길이기도 하다.

임을출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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