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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를 모르던 정우가 세상과 속삭이게 됐어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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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화 교수(中)가 환자에게 인공와우를 이식하는 수술을 하고 있다.


5~6개월 무렵, 정우는 정밀검사를 위해 A병원에서 청성뇌간 반응검사를 받았다. 양쪽 귀가 심각한 난청이었다. 이후 오른쪽 귀에 보청기를 착용하고 지냈는데 “정우가 소리를 제대로 못 듣는 것 같다”고 한 보호자의 말처럼 큰 효과는 없어 보였다. 첫돌이 지나자 보호자는 수술(인공와우 이식술)을 결심하고, 2월 23일 삼성서울병원 이비인후과 홍성화 교수의 외래를 방문했다. 홍 교수는 그 당시까지 다른 병원에서 검사받은 내용을 검토한 뒤 “한 달 뒤 입원해 수술에 필요한 정밀검사를 받자”는 결정을 내렸다.

돌 지났는데 언어 발달은 4~7개월 수준

수술에 사용된 인공와우. [최승식 기자]

3월 23일, 이비인후과 병실에 입원한 정우는 청성뇌간 반응· 청성지속 반응·이음향방사 검사· 전기와우도 검사 등 다양한 청력검사를 다시 받았다. 언어 능력 평가에선 큰소리에도 반응하지 않았으며 언어 발달은 늦어져 4~7개월 수준으로 나타났다. 홍 교수는 보호자에게 “오른쪽 귀는 소리가 어느 정도 감지되는 잔청이 확인되니 보청기 착용만 하고 인공와우 이식술은 왼쪽 귀만 받는 게 좋겠다”고 설명했다.

4월 28일 입원한 정우는 다음 날 오전 7시30분, 가녀린 팔에 링거 수액을 매단 상태로 수술장에 입장했다.

수술대에 눕혀진 정우의 온몸엔 수술 중 전신 상태를 관찰하는 각종 모니터가 일사천리로 장착됐고 마취가 시작됐다. 정우가 깊은 잠에 빠지자 일단 전임의가 안면신경 상태를 감지하는 기구를 정우의 얼굴에 부착한다. 홍 교수는 기자에게 “수술 부위 주변에 안면신경이 지나가기 때문에 수술 도중 이 신경이 다치지 않는지 모니터 하는 게 중요하다”며 부착 이유를 들려준다. 수술 준비가 끝나자 본격적인 수술이 시작됐다.

일단 홍 교수는 귀 뒤쪽에서 시작해 위쪽에 걸쳐 ‘S자’ 모양으로 10㎝ 정도의 피부와 근육을 절개한 뒤 뼈를 노출시켰다. “이 아래 부위엔 구멍이 듬성듬성한 공기 세포로 구성된 유양동이란 뼈가 있어요. 여기를 드릴로 길이 2~3㎝ 되게 파 공기 세포를 긁어내야 합니다. 4㏄ 정도 긁어야 인공와우가 들어갈 자리가 마련됩니다.”(홍 교수)

드릴 작업이 끝나자 정원 창(중이에서 달팽이관으로 통하는 구멍인데 얇은 막으로 덮여 있다)이 드러났다. 홍 교수는 다시 이곳에 1㎜ 정도의 작은 드릴을 이용해 구멍을 낸다. 전극이 삽입되는 길을 만들기 위해서다.

인공와우를 삽입할 공간이 확보되자 홍 교수는 수술팀을 향해 “스위치를 끄라”고 명령한다. 즉시 전기소작기같이 전류가 흐르는 기계는 모두 정지됐다.

준비된 길과 구멍에 전극 등 필요한 장치가 삽입됐다. 주변의 공간은 수술용 접착물질로 채워졌다. “장착한 전극을 고정하는 작업”이라는 게 홍 교수의 설명이다.

드디어 인공와우가 이식된 것이다. 홍 교수는 수술 초기에 절개한 근육과 피부 등을 봉합하면서 수술을 끝냈다. 어른은 실로 꿰매지만 정우 같은 어린아이에겐 봉합용 테이프를 사용한다.

24개 채널로 소리 전달…언어재활 치료 남아

홍 교수가 수술대에서 나오자 삽입된 장치(전극)의 위치와 기능을 확인하는 작업이 진행됐다. 수술 3일째, X선 검사로 전극의 위치가 제대로 붙어 있는 것을 재확인받은 정우는 5월 2일 퇴원했다.

이후 5월 28일, 6월 4일, 6월 10일 등 세 번에 걸쳐 정우는 이식된 달팽이관 안에 있는 24개 채널의 전극을 통해 소리가 전달되는 과정을 조율하는 매핑 과정을 겪었다. 이제 남은 마지막 과제는 초등학교 입학 후까지 지속하는 언어재활치료다.

황세희 의학전문기자·의사, 사진=최승식 기자



선천성 난청

신생아 때 치료 받아야 언어·지능 제대로 발달

신생아 1000명 중 한 명은 선천성 난청 상태로 태어난다. 임산부가 풍진이나 헤르페스를 앓은 경우, 미숙아·저체중아·난산으로 저(低)산소증에 빠진 신생아 등은 청력을 잃은 채 태어날 수 있다. 또 선천적으로 달팽이관이 제대로 발달하지 못한 아이, 신체의 여러 기형이 함께 동반된 난청, 유전성 난청 등 다양하다.

원인에 관계없이 정우처럼 신생아 때 선별검사로 난청을 발견해 조처를 취해야 정상적인 언어와 지능이 발달할 수 있다. 검사를 못 받은 어린이 난청 환자는 통상 30개월쯤 돼서야 난청을 발견한다. 이미 말을 배우고 지능을 개발해야 할 시기를 놓친 셈이다.

신생아 때 청력 이상이 발견되면 첫돌 이전에는 보청기(골진동기) 등을 착용해 청력을 상당 부분 보존할 수 있다. 이 시기를 놓치면 소리에 대한 음감(音感)을 완전히 상실해 못 듣는 것은 물론 말도 못할 가능성이 커진다. 설사 나중에 청력을 복원하는 인공와우 이식술과 재활치료를 받아도 효과는 나쁘게 마련이다.

난청 환자를 위한 와우이식술은 청력장애 환자의 희망이다. 국내에 도입된 지 20년이 넘었다. 와우(달팽이관)는 제일 안쪽에 위치한 내이(內耳)를 형성하는 나선상의 관. 와우이식술은 말 그대로 와우의 기능을 대신해 주는 수술인데 전극을 와우 부위에 이식해 나선신경절 세포(청각 신경 세포)를 직접 자극해 뇌가 소리로 인식하도록 하는 수술법이다. 따라서 선천적으로 와우가 아예 없는 환자는 수술 대상이 아니다. 또 나선신경절 세포가 최소한 정상인의 10%는 있어야 수술 결과가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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