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틀러와 루스벨트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118호 15면

관타나모에 정치범을 수용하고 이라크 전쟁을 일으킨 부시에게서 히틀러를, 수용소를 폐쇄하고 코란을 인용해 가면서 이슬람 세계에 손을 내미는 오바마에게서 루스벨트를 떠올리는 이들이 적지 않다. 역사는 히틀러를 전쟁광으로, 루스벨트를 위대한 지도자로 평가하지만 히틀러와 루스벨트에게는 다음의 공통점들이 있다. 우선 히틀러는 아우토반, 루스벨트는 후버댐 등 인프라 구축과 고용 창출을 위한 건설 주도 정책을 썼다. 또 히틀러는 광장에서, 루스벨트는 라디오의 노변정담으로 대중의 마음을 움직이는 탁월한 설득력을 지니고 있었다. 둘 다 불황기의 지도자로 경제 부흥과 분배를 비교적 성공적으로 해 나갔기 때문에 대중적 사랑을 받았으며 히틀러는 유겐트와 괴벨스의 SS친위대로, 루스벨트는 보이스카우트 등으로 집단정신을 고취시켰다.

이나미의 마음 엿보기

그리고 두 지도자 모두 국가와 정부가 경제와 사회를 통제해야 한다고 믿었다. 또 히틀러는 파킨슨병과 과민성 대장염을, 루스벨트는 소아마비를 앓아 신체적 제한이 있었다. 마지막으로 전쟁광이었던 히틀러는 물론 루스벨트도 미국을 전 세계의 무기공급 국가로 만드는 데 열성적이었고, 세계대전으로 4선 대통령이 되었으니 전쟁이 그들의 리더십을 부각시킨 면이 있다.

세계를 선악의 대결구도로 보고 모든 것을 정신병리적으로 설명하자면 루스벨트는 소아마비에도 불구하고 국가를 위해 헌신한 위인이고 히틀러는 열등감이 만든 과대망상과 편집병 환자였다고 단순화시킬 수도 있다. 하지만 마음 속 선과 악의 공존을 인정하는 분석심리학적 입장에서는 그들 인생의 결과가 확연히 다른 것은 성격이나 능력의 차이라기보다는 중요한 시점마다 내린 의식적인 혹은 무의식적인 선택 때문이라 본다.

히틀러는 대통령이자 총리라는 절대 권력을 갖게 된 이후 의회와 법을 무시하면서 ‘지도자의 원칙(Fhrerprinzip)’에 따라 수직하달과 절대복종으로 모든 의사결정을 밀어붙인 반면 루스벨트는 세세한 항목을 법문화해 상·하원의 인준을 받는 과정을 견뎠다. 히틀러는 유대인을 학살했지만, 루스벨트는 일본인을 수용하긴 했으나 종전되자 모두 석방하고 인종주의적 범죄에 반대하는 법을 통과시킴으로써 소수민족에 신망을 얻었다. 히틀러는 기독교 등의 전통과 가치를 부정하고 오로지 나치당에 대한 철저한 헌신을 요구했으나, 루스벨트는 ‘네 개의 자유(Four Freedom)’란 기치로 국민이 자유로운 선택을 하도록 했다.

일을 결정할 때의 적법한 과정과 힘없는 상대방에 대한 배려, 아군에 대한 엄정한 객관적 평가 등 겉으로는 드러나지 않는 지도자들의 결단과 선택이 나중에는 엄청난 파장이 되어 조직의 운명을 결정짓는다. 시대는 21세기인데도 정계·재계·학계 모두 제왕시대의 운영에서 벗어나지 못한 면이 많다. 마음에 숨어 있는 권력욕은 약육강식의 법칙에서 자유롭지 않기에, 모두가 잘살기 위해서는 합리적인 시스템과 리더의 섬세함이 필요하다. 파괴적 집단은 합의와 타협 대신 외부와 내부의 적을 만들어 싸우느라 에너지를 다 써 버린다. 테러 집단인 알카에다마저 오바마를 “현명한 적”이라고 인정하는 이 시대, 한민족만 뒤로 가는 일이 없기를!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