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 횡단보도 선 밟는 건 신나는 모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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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집으로 가는 길

히가시 지카라 글·그림,김수희 옮김
개암나무, 48쪽, 8000원

배운 것도 아닌데 꼭 하게 되는 행동이 있다. 길을 가면서 ‘오늘은 하얀 선만 밟고 가야지’ ‘선을 절대 밟지 말아야지’ 등으로 마음먹는 것도 그 중 하나다. 한번 그렇게 결심하면 그 원칙을 무시하기가 쉽지 않다. “빨리 오라”고 재촉하는 엄마의 눈치를 봐가며 ‘임무’를 완수해 본 경험. 누구나 한번쯤 해봤을 일이다.

깡충깡충 흰 선만 밟고 횡단보도를 건너는 하늘이. 헛디디면 낭떠러지로 떨어지는 조마조마한 모험이다. [개암나무 제공]


세상이 많이 바뀌었다지만 동심은 똑같다. 일본의 그림작가 히가시 지카라의 신작 『집으로 가는 길』에는 평범한 일상을 흥미진진한 모험으로 만드는 아이들의 상상력이 실감나게 그려졌다. 하굣길 하늘이. 아스팔트 도로 위의 하얀 선만 밟고 집까지 가기로 정했다. 하얀 선 밖으로 발을 디디면 큰일이 난다. 하늘이 상상 속에서 하얀 선 밖은 까마득한 낭떠러지이기 때문이다. 하늘이는 절벽 아래로 떨어질까 조심조심 하얀 선만 밟고 간다. 마무리도 절묘하다. 하얀 선이 뚝 끊겨버린 집 앞. 한발도 더 내디딜 수 없는 하늘이에게 누가 구명 헬기 역할을 해줄 것인가. 웃음과 공감이 따뜻하게 승화됐다.

아이의 눈으로 세상 바라보는 능력을 잃어버린 어른 독자들에게도 흥미있을 법한 책이다. 하늘도, 땅도 보지 않고 앞만 보고 걸었던 게 언제부터였던가. 딱딱해진 감성에 새삼 자극이 될 수 있겠다.

이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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