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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세근특파원 현지르포 10신]인도네시아 어떻게 수습할까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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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인도네시아 소요가 다소 진정된 틈을 타 수하르토 대통령이 개각.물가인상 철회 등 수습방안을 내놓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같은 달래기 작전이 얼마나 효과를 거둘지 미지수다.

"수하르토는 허락없이 움직이는 사람을 무조건 의심한다. 비판은 절대 사절이고 1백% 복종만 허락된다. 수하르토 주변엔 침묵과 동의만 존재한다.그 결과 지금의 대규모 혼란이 초래됐다. " 2천8백만 회교도의 모임인 무하마디야를 이끌고 있는 아미엔 라이스 (53) 의 정책보좌관인 이부누 위토엘라가 17일 기자와의 전화인터뷰에서 내린 정국진단이다. 수하르토의 독단과 전횡이 시위사태를 불렀다는 비난이지만 '정국의 매듭을 풀 사람은 그래도 수하르토밖에 없다' 는 얘기로도 들린다.

재야단체 '페티시 (청원) 50' 의 수산 찬드라 사무총장도 "이제는 수하르토가 카드를 내놓아야 할 때" 라고 말했다. 국민이 내놓은 '정치개혁 혹은 퇴진' 이라는 물음에 답변하라는 재촉이다.

'마타 하리' 라는 컴퓨터 업체를 운영하고 있는 화교 보브 친 (51) 사장은 "어제 저녁 군부 고위 장성들과 저녁식사를 하는 자리에서 '대통령이 매우 고민하고 있다' 는 얘기를 들었다. 국민들이 납득하게끔 '깜짝 놀랄만한 조치' 가 필요하다는 얘기도 나왔다" 고 전했다.

상황은 정치 10단인 수하르토로서도 쉽게 풀기 어려울 만큼 난마처럼 얽혀 있다. 그는 16일 일단 개각카드를 꺼냈다.

뚜껑을 열어봐야겠지만 민심 달래기용인 만큼 큰 폭이 될 것이란 견해가 우세하다. 기름값 인상과 철회를 오락가락한 보브 하산 무역산업장관과 여론의 표적인 대통령장녀 시티 하르디얀티 사회장관 등의 퇴진이 점쳐진다.

위란토 국방장관의 퇴진설도 나온다. 수하르토는 셋째 사위인 프라보요 전략방위사령관을 국방장관 겸 통합군사령관에 발탁함으로써 군부에 대한 국민들의 불만을 달래고 군부 장악력을 더욱 높일 것이라는 분석에서다.

그러나 개각만으로 국민들과 학생들을 납득시키기는 어려운 형국이다. 따라서 족벌체제의 과감한 정리, 그동안 소외됐던 수마트라출신 인사 등 비 (非) 자바세력의 과감한 등용, 대통령 선출기관인 국민협의회 (MPR) 를 통한 정치개혁 등의 조치도 약속할 공산이 크다.

집권 골카르당은 최근 "대통령의 무기한 연임을 보장한 헌법규정을 '한번에 한해 중임할 수 있다' 로 바꾸는 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고 밝혔다.성역으로 간주되던 대통령 임기부분에 메스를 가하려는 최초의 움직임이다.

수하르토는 여기까지를 마지노선으로 잡고 있는 듯하다. 이같은 양보에도 불구하고 시위가 계속된다면 칼을 빼들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강경책이 다시 전국적인 시위와 폭동을 유발하는 최악의 시나리오로 치닫는다면 어떻게 될까. 저명한 정치평론가 와히유 사디크 (48) 는 "수하르토가 택할 마지막 선택은 친위쿠데타" 라고 잘라 말했다. 미국과 국제통화기금 (IMF) 의 서슬퍼런 감시아래서 수하르토가 직접 나서 '대량학살을 통한 정권유지' 를 시도하기는 어렵기 때문에 친위쿠데타를 통해 계엄을 선포, 질서를 유지한 뒤 대통령에 재추대되는 형식을 밟을 것이란 예상이다.

그러나 재야단체인 민주주의 포럼의 마르실람 시만준탁 (51) 은 "수하르토의 하야와 과도 정부구성만이 유일한 해결책" 이라고 주장했다.수하르토가 일단 퇴진한 뒤 자신의 부하들과 재야세력들로 구성된 과도정부를 구성해 개혁조치를 실시한다면 수하르토 본인도 안전을 보장할 수 있음은 물론 국민들도 납득할 것이란 얘기다.수하르토의 모든 '술책' 이 통하지 않을 경우 선택할 수 있는 마지막 카드인 셈이다.

자카르타 = 진세근 특파원 〈sk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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