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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아라리 난장 113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9면

채낚기 어선을 같이 탔던 어부들과 입씨름을 하면서도 변씨의 눈길은 사뭇 조리대를 지키고 서서 도마질에 열중하고 있는 묵호댁의 거동에서 시선을 뗄 줄 몰랐다. 그렇지만 묵호댁의 꿍꿍이속을 읽어내기란 손쉬운 일이 아니었다.

음식은 묵호댁이 끓여내고, 술청의 수습과 접대는 어느덧 승희의 일로 확연하게 분담이 되어 손발이 척척 맞아 떨어졌다. 두 사람의 손발이 오묘하게 맞아 떨어진다는 사실이 변씨에겐 불안한 것이었다.

승희가 묵호댁의 역할을 흡족하게 여길수록 묵호댁을 멀찌감치 따돌릴 수 있는 가망과는 거리가 멀어지기 때문이었다. 결국은 어떤 방도조차 떠오르지 않고 속만 탈 뿐이었다. 그는 당일발이 채낚기 어선을 같이 타자고 짓조르는 어부들의 권유를 뿌리치고 식당을 나섰다. 곧장 집으로 갔더니, 봉환은 형식이가 거처하고 있는 안방에 우두커니 앉아 있었다. 밖으로 데리고 나와서 식당의 내막을 보았던 대로 실토정을 하였다.

그러나 그 결과 역시 두 사람 입에서 흘러나오는 한숨소리뿐이었다. 묵호댁이 가게를 지키고 있는 한 봉환은 집으로 들어갈 수도 없었고, 그렇다고 진부령 갔던 일행이 돌아오는 길로 섣불리 합류하고 외장길로 나설 수도 없는 딱한 처지가 되고 말았다. 변씨가 봉환을 설득해서 오징어 채낚기 어선을 탄 것은 이튿날 오후였다.

한 가지 이상한 것은 그때까지도 승희가 봉환을 찾아나서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양양에서 주문진으로 돌아온 지 꼬박 하루가 지나도록 가게에 얼굴을 비친 적도 없었고, 이렇다 할 통기도 없었다면, 필경 궁금했을 텐데도 엎어지면 코 닿을 자리인 변씨집의 낌새조차 알아보려 하지 않았다.

그것이 미심쩍고 불안한 일이었지만, 다급하게 된 봉환으로선 따져볼 겨를이 없었다. 우선은 변씨가 하자는 대로 채낚기 어선을 타서 승희에게 둘러댈 변명거리나마 만들어두자는 심산이었다.

오후4시경에 출항한 18톤급 당일발이 청일호에는 모두 8명의 어부들이 승선하고 있었다. 전날 영동식당에서 변씨가 만났던 늙바탕의 어부들이었다. 예나 지금이나 바다에는 여름 겨울이 따로 없었다.출항한 지 한 시간도 채 지나지 않아서 속에 뼈가 들어 있다는 매서운 칼바람이 살갗을 파고들었다.

모두들 주섬주섬 방한복을 껴입기 시작했다.뭍에서는 일찍 달려온 초여름 햇살이 뒷덜미에 따가운데, 바다는 아직도 한겨울 그대로였다. 변씨는 이물간에서 옛 동료들과 어울려 쉴새없이 떠들고 있었다. 그러나 봉환은 안면도 익지 않은 터라, 좁은 선실에 쭈그리고 않아 느글거리는 뱃멀미를 달래고 있었다.

선실이 좁다는 것은 익히 알고 있었지만, 선실 한편에 아무렇게나 쌓아둔 이불과 담요자락에서 풍기는 역한 냄새 때문에 코를 막고도 앉아 견디기가 쉽지 않았다. 발고린내인가 하면 오래도록 방치해둔 수채냄새이기도 했다.

그런가 의심하면 다시 송장 썩는 냄새가 분명하다는 생각이 들면서 골머리가 지끈거리도록 아파왔다.다부지게 생긴 체격 때문에 통감자라는 별호를 가진 봉환도 냄새 때문에 두통을 느낀 것은 생전 처음 당하는 고통이었다.

코를 막고 있던 손을 놓아버리면, 금세 와르르 토악질이 쏟아질 것 같이 돌격적으로 정제된 구린내는 이부자리뿐만 아니라, 선창의 무쇠벽에까지 처절하게 배어 있어서 한바다까지 나가서 선채를 수달처럼 바닷물 속에 담그고 뒹굴면서 속속들이 씻어낸다 할지라도 지워질 것 같지 않았다. 그나마 가까스로 얻어 탄 배의 선실에서 골이 터질 것 같은 냄새가 난다고 투정할 수도 없어 헉헉거리며 가쁜 숨만 몰아쉬고 있는데, 수시로 선실을 드나들고 있는 어부들은 냄새에 대해서는 쓰다달다 말이 없었다.

그들에겐 익숙해진 탓이긴 했지만, 익숙하지 않은 봉환에겐 고통스럽기 짝이 없었다. 그런데 변씨 또한 수시로 선실 밖에 나타나서 뱃구레와 코를 함께 틀어쥐고 있는 그에게 진득하니 앉아 있으라고 신신당부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 지독한 냄새가 바로 뱃멀미를 일찌감치 퇴치해주는 효험이 있었다는 것은 나중에서야 터득한 일이었다.

〈김주영 대하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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