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상님 유산, 꼭 맞는 주인 찾아줘서 홀가분해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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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10일 경기도 이천시 백사면 내촌리. 좁은 소나무 길을 지나 2분 정도 들어가니 작은 정자를 품은 연못이 나왔다. 연못 너머 낮은 돌담의 기와집이 김좌근(1797~1869) 대감의 고택(古宅)이었다. 고택은 수리 중이었다. 수리용 철재 골조 사이로 차분한 곡선의 기와 지붕이 드러났다. 짙고 반들반들한 나무 기둥이 단단해 보였다.

경기도 이천시 백사면 내촌리의 김좌근 고택. 원래 99칸이었으나 지금은 안채와 사랑채를 합쳐 42칸만 남아 있다. 삼 겹으로 된 문과 최고급 목재, 세부 장식이 조선 후기 안동 김씨의 권세를 잘 드러내준다. [이천시 제공]


고택 앞마당에서 전은기(77), 딸 김은희(58·동양화가) 여사가 서울대 이장무 총장을 반겼다. 마당에는 김좌근 대감의 묘비가 옮겨져 있었다. 흥선대원군의 친필이 담긴 묘비다. “기부를 앞두고 선조들의 묘를 다 이장했습니다.” 전 여사의 설명에 이 총장은 “감사합니다”며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조선 후기 세도가 하옥(荷屋) 김좌근 대감의 고택(경기도 지정문화재 민속자료12호)이 서울대의 품에 안겼다. 김 대감의 6대 손인 김씨와 어머니 전 여사가 고택과 주변의 땅 10만1500㎡(약 3만700평)를 최근 서울대에 기부한 것이다. 일대의 땅은 공시지가로만 따져도 60억원 정도의 가치다. “하지만 문화재로서 고택의 가치는 땅값과 비교도 할 수 없다”는 것이 함께 현장을 찾은 전봉희(건축학과) 교수의 설명이다.

전은기 여사(左)와 김은희 화가가 서울대 이장무 총장(中)과 함께 기부한 고택 마당에서 담소를 나누고 있다.


고택은 1865년(고종 2년)에 지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당시 영의정에서 물러나 실록총재관을 지내던 김 대감이 서울 교동의 집 외에 별업(별채)으로 지은 99칸 기와집이다. 전 교수는 “전국에 문화재급 주택은 600여 채가 있지만 서울 사는 권세가가 별채 개념으로 지은 집으론 유일하게 남아 있다”며 “나무를 다듬은 솜씨나 최고급 세부 장식, 이중(二重)이 아닌 삼겹문 등이 당시 안동 김씨의 권세를 보여 준다”고 말했다. 집의 구조와 건축기술 등이 학술 사료로서도 가치 있다는 설명에 이 총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전 여사는 남편 김광한씨가 1997년 별세한 뒤부터 고택을 기부하려고 생각해 왔다. 딸인 김씨는 독신이다. 물려줄 후손이 없는 데다 모녀가 고택을 관리하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니었다. 나무 뒤주며 돌항아리 같은 값나가는 물건을 노리는 도둑도 끊이지 않았다.

기부 고민이 10년 넘게 이어진 것은 누구에게 맡겨야 좋을지 알 수 없어서였다. 고택을 원하는 사람에게 팔아 그 돈을 장학금으로 내놓을까도 생각했다. 종교단체에 맡길 생각도 해 봤다. 서울대에 맡길 결심을 한 것은 고택을 잘 지켜 주는 동시에 좋은 곳에 활용할 수 있을 것이란 생각에서다. “지난해 신문에서 전봉희 교수님이 한옥을 연구하신다는 기사를 읽었어요. 이런 교수님이 계시면 얼마나 우리 고택을 아껴 주실까 하고 생각했지요.” 전 여사가 이 생각을 전하자 고택과 뒷산을 물려받은 김씨도 흔쾌히 동의했다.

전 여사는 10만㎡(약 3만 평)가 넘는 땅을 함께 기부한 것은 “주변 땅과 고택이 떨어질 수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 고택 터는 뒤가 야트막한 산으로 둘러싸인 최고의 명당으로 꼽힌다. “기와집을 유지하려면 땅 모양새가 같이 어우러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이왕 기부하는 것 조상님께 부끄럽지 않게 해야 하잖아요.”

서울대는 고택의 원형을 복원해 학술자료로 활용하겠다고 약속했다. 99칸이던 기와집은 70년대 중반에 민속촌 이전 계획이 취소되면서 담장과 행랑채가 없어진 채 안채와 사랑채(모두 42칸)만 남은 상태다. 이 총장은 “소중한 문화재를 기부받은 만큼 전 교수가 직접 고택 복원공사를 맡도록 해 잘 되살리겠다”며 “주변 땅은 원예학과 교수들과 상의해 약초 재배와 원예 등에 활용하겠다”고 전 여사에게 약속했다.

“가볍습니다.” 전 여사는 고택을 기부한 뒤의 심정을 이렇게 표현했다. “마음이 가벼워 잠이 너무나 잘 옵니다. 다들 얼굴 좋아졌다고 해요. 조상님의 유산에 맞는 주인을 찾아 줘서 그런가 봅니다.” 물건에 제 주인을 찾아 주는 것. 모녀가 생각하는 기부는 그것이었다. 

임미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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