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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삶의 향기

천리길도 한 걸음부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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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7면

얼마 전 내 생일에는 멀리 러시아의 가가린 우주인 훈련센터에서 친하게 지낸 러시아 우주인이 보낸 생일 축하 메일을 받았다. 생일 축하 메시지와 함께 사진 한 장을 첨부했는데, 6명의 우주인이 함께 찍은 사진을 포토샵으로 우스꽝스럽게 얼굴을 찌그러뜨리고, 그 위에 ‘Soyeon with a Happy Birthday from Martians!’라고 파란색 큰 글씨로 타이핑한 사진이었다. 떠나온 지 1년이 넘었는데 아직까지 생일을 기억하고 축하 인사와 사진을 보내준 것이 너무나 고마웠다. 하지만 동시에 얼마 전 일본에서 온 선물을 받을 때와 같은 묘한 기분이 들었다. 생일 축하를 해준 사람들은 ‘Martians(화성인)’였고, 배경은 화성으로 우주인을 보내기 위해 제작된 훈련모듈이었다.

우리나라는 지난해 4월 세계에서 36번째로 우주인을 우주로 보냈다. 거의 50여 년 전 세계 처음으로 우주비행에 성공한 러시아와 40여 년 전 달에 우주인을 보냈던 미국을 생각할 때 이제 첫 걸음마에 불과하다는 생각은 했었지만 거의 같은 시기에 두 나라가 화성으로 우주인을 보내려고 노력하고 있다는 사실을 사진으로 접하고 나니 마음이 좀 더 조급해진다.

50여 년 전 인류 최초로 러시아가 우주에 사람을 보냈던 그때, 미국이 달로 우주인을 보내던 그때 우리는 전쟁을 치르고 난 폐허에서 끼니도 연명하기 힘들었다. 출발선이 다른 상황에서 레이스 중간에 뒤처진 것으로 선수의 능력을 판가름할 수는 없다. 천리길도 한 걸음부터다. 물론 항상 뒤에서 쫓아가는 선수가 앞쪽에서 뛰는 선수보다 쉬 지치고 더 힘든 느낌을 받는 것이 사실이지만 뒤쪽에서 쫓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잊고 조금만 더 힘을 내면 하나 둘 제치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또한 경기에서 앞서 뛰는 선수라면 분명히 이전에 더 많은 훈련과 준비 과정이 있었을 것이다.

세계 최고 김연아 선수도, 박태환 선수도 처음에는 기본적인 훈련에서 시작했듯이 긴 노력과 훈련이 있을 때 비로소 세계 최고의 자리에 가까워진다는 사실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비록 우리가 시작은 좀 늦었지만 끊임없는 노력이 계속된다면 언젠가는 앞서간 나라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날이 올 것이라 믿는다.

이제 막 피겨스케이팅을 시작한 선수가 가져야 할 자세라면 세계 최고 김연아 선수를 바로 앞지를 수 없는 것에 열등의식을 느끼기보다는 김연아 선수가 노력한 과정들을 배우며 꾸준히 노력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우주를 향한 우리의 도전도 크게 다르진 않을 것이다. 우리나라 대한민국은 다른 나라가 50년의 노력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을 45년 아니 40년의 노력으로 이뤄낼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진 나라라고 나는 확신한다.

이소연 우주인·항공우주연구원 선임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