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조선초기 불화는 월인천강지곡등 경전내용 그린것"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4면

고려시대 '아미타불화 연구' 로 박사학위를 받은 정우택 (鄭于澤.경주대) 교수는 지금까지 알려진 고려불화의 숫자에 대해 가장 정확하다. 지난 3월 일본에서 새로 '지장보살도' 한 점이 공개돼 그가 세고있는 현존 고려불화는 1백43점으로 늘어나게 됐다.

鄭교수는 최근 관심의 폭을 연구 황무지에 가까운 조선초기 불화까지 넓혔다. 지난달 25일 그가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린 미술사학회 봄 정기발표회에서 주목할만한 발표를 해 그 자리에 있던 정양모 국립중앙박물관장과 안휘준 (서울대) 교수 등을 놀라게 했다.

발표내용은 일본 후쿠오카 시내의 혼카쿠지 (本岳寺)에 소장된 '석가탄생도' 가 조선초기의 한글경전에 의해 그려졌다는 것. 조선초 세종은 죽은 왕후를 위해 수양대군에게 석가세존의 일대기를 한글경전으로 엮게 하고 (釋譜詳節) 그것을 읽은 뒤 스스로 국한문의 칭송노래 (月印千江之曲) 를 지었는데 혼카쿠지 '석가탄생도' 그림 내용이 그 노래내용과 일치한다는 주장이다.

문제의 '석가탄생도' 는 지난해 가을 일본 야마쿠치 (山口) 시립미술관 전시때 처음 학계에 공개된 조선초기 불화다. 원래 석가 일생을 그린 8폭 가운데 한 폭만 남은 것이라고 당시 한국과 일본학자들 사이에 추정되었던 그림이다.

2백여장의 슬라이드를 비추며 3시간 가량 진행된 발표에서 정교수는 이 그림과 월인천강지곡의 내용 그리고 석보상절에 딸린 목판그림과 하나하나 대조해 보였다. 예를 들면 '월인천강지곡' 18번째 곡에 '부처님 나실 때 상서 (祥瑞) 로움이 먼저 나타나니… 하늘의 신령이 칠보로 꾸민 수레를 이끌고 오며, 땅에서 보배가 절로 나며…' 로 되어있는데 그림에도 꼭같이 이런 장면이 등장한다는 것이다.

또 한글경전에 근거했다는 주장으로서 정교수는 그림 속 전각의 지붕 짜임새가 조선초기 건물의 그것과 일치하고 전각 속을 치장한 산수화 그림도 조선초기의 전형적인 산수화인 점을 들었다.

석가 탄생을 부친인 정반왕 (淨飯王)에게 알리는 장면에 등장하는 왕의 복장이 조선초기 왕의 복식 (九章服) 과 같다는 점도 예증자료로 열거했다.

정양모 관장은 "한글경전에 근거해 조선불화가 그려졌다는 사실은 놀라운 일" 이라며 불화에서 보이는 전체적인 선의 흐름이 '조선적' 이라고 말했다. 정우택교수는 이날 발표내용을 오는 6월 발간되는 미술사학연구 2백18호에 수록, 학계에 정식 발표할 예정이다.

윤철규 미술전문기자

〈ygado@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