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네시아 최대소요지를 가다]분노의 약탈·방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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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메단시를 휩쓸던 학생시위와 주민들의 약탈.방화는 8일들어 일단 잠잠해졌다. 그러나 이날 낮 기자를 공항에서 시내까지 안내한 택시기사 수리노요 (30) 는 "여전히 소요가 계속되고 있다" 고 전했다.

군중이 가옥과 상점을 불태우거나 부수고 물건을 훔쳐내다 경찰과 진압 군인들이 나타나면 개미떼처럼 흩어진다는 것. 아담한 규모의 메단공항은 기관단총과 소총, 무전기로 무장한 군인 20여명이 비상 근무중이고 공항에서 시내까지 20여분을 달리는 동안 목격한 길 양쪽의 상점들은 전부 철제 셔터로 닫혀 있었다. "대부분 털렸어요. 화교상점들이거든요. " 수리노요의 귀띔이다.

현지 신문은 시외곽의 시안타르.빈자이.바부크.파칸지역은 모든 상가와 은행이 철시해 유령도시로 변했다고 보도했다. 메단 경찰서의 노로 프리요노 서장은 이날 포고문을 통해 "저격부대를 편성했다. 이들은 오토바이를 타고 시 전역을 순찰하면서 약탈.방화범을 발견할 경우 즉각 발포할 것" 이라고 발표했다. "시 외곽 소요지역에도 이들을 곧 파견할 것" 이라고 그는 덧붙였다.

이제는 더이상 피를 두려워하지 않겠다는 얘기다. 북수마트라 군사령부도 이날 "군 전략예비대 소속 305연대를 자카르타에서 메단으로 공수했다" 고 발표했다. 지역 방위군으로도 충분히 질서를 유지할 수는 있으나 메단 북부 아체지역이나 이리안 자야.동티모르 등 기타 지역 소요에도 대비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라는 설명이 뒤따랐다.

반정부 시위의 진원지 메단시는 잠시 침묵중이었으나 군인들로 채워진 도시 전체가 당겨진 활 시위처럼 팽팽한 긴장감으로 가득 차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한 공터에는 군용헬기가 굉음과 먼지바람을 일으키며 막 이륙하는 중이었다. 장갑차와 군인들을 가득 태운 트럭이 바삐 오갔다.

메단시내 호텔들은 미처 다른 지역으로 빠져나가지 못한 화교들로 넘쳐날 정도였다. 중심가의 노보텔 소이치 호텔에 묵고 있는 재키 린 (35.식료품점 경영) 은 "6일 밤 폭도가 창문을 깨고 가게로 들이닥쳐 노모와 처, 세 어린아이를 간신히 이끌고 옆집으로 피신했다가 날이 밝자마자 호텔로 도망왔다" 며 한숨을 쉬었다. 이와 대조적으로 한 주민은 "학생시위에 시민들이 가세하다가 화교 상점을 털기 시작했다" 며 "화교들은 너무 거만하다" 며 노골적으로 적대감을 내비쳤다.

도시 곳곳에선 복구작업도 벌어지고 있었다. 공무원들에겐 제복대신 작업복을 입고 출근하라는 명령이 떨어졌다. 메단 경찰당국이 밝힌 공식 피해규모는 ▶방화 및 약탈피해 상점 1백70개 ▶차량 38대.오토바이 21대 파손 ▶소년 1명 사망. 그러나 현지 주민들은 "실제 피해는 훨씬 더 크다" 고 말했다. 사망자만도 당국이 발표한 6명을 넘는다는 주장이다.

실제로 자카르타를 떠나기 전 만난 메단 출신의 한 여행사직원은 "걱정이 돼 고향집으로 전화했을 때 메단 부근의 한 마을에서만 20명이 죽었다는 얘기를 들었다" 고 말했다.

이번 시위로 '공식' 연행된 사람은 대학생 1백45명.고등학생 28명 등 모두 4백23명. 한 경찰관계자는 "이들 가운데 어린아이들도 있다. 어린아이가 약탈을 하는 장면을 상상해 보라. 기가 막힌 일이다" 며 고개를 내저었다. 메단시내 울란 윈디병원 등에는 고무탄을 맞고 부상한 시위대 10여명이 치료를 받고 있다.

진세근 특파원

〈sk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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