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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30돌 맞은 프랑스 5월운동 '그날이후'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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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6면

68년 5월. 프랑스 파리 소르본대가 위치한 라탱가 (街)에서 분출돼 유럽전역과 미국.멕시코.일본으로 번져간 학생운동 또는 문화혁명. '위대한 실패' 라는 표현은 적절치 않다. 권위에 대한 저항과 불신의 표현으로 제반 문화행위가 그 부산물이기에 그렇다.

심지어 언어의 구어체화, 복장의 자유화까지도 같은 맥락에서 해석된다. 철도역과 도살장이 '문화의 전당' 으로 바뀌었던 사연도 예외는 아니다.

정수복 박사의 지성사 흐름짚기와 함께 문화장르별 현상을 돌아본다.

하나의 역사적 행동이 갖는 보편적 의미와 그것을 만든 주체들이 내세운 이념 사이에는 간격이 존재할 수 있다. 프랑스의 68년 5월운동의 경우가 그렇다.

새 술이 헌 부대에 담겨진 것이다. 30년전 파리시 소르본 대학의 기둥에는 레닌.모택동.체 게바라의 초상화가 나란히 붙어 있었다.

그러나 오늘날 68년 5월운동은 전통적인 좌파운동이라기보다는 새로운 사회를 지향하는 새로운 좌파와 새로운 사회운동이 형성되는 출발점으로 평가된다. 5월운동 이전 프랑스 지성사는 전체적으로 실존주의에서 구조주의로 이동하고 있었고 그 과정에서 마르크스주의와 구조주의의 접합이 시도됐다.

그러한 경향을 대표하는 알튀세르의 '맑스를 위하여' 와 '자본론독해' 가 1965년이고 레지스 드브레의 '혁명속의 혁명' 이 1967년에 출판되었다. 그런데 스스로 새로운 의미를 창조하는 행위의 주체들이 형성되는 사회적 열광의 시기에 행위의 주체를 사회체계나 사회구조로 불리는 장기.지속의 감옥으로 환원시키는 구조주의적 마르크스주의가 풍미한 것은 지성사적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그러기에 68년5월 이후 30년의 사회사와 지성사는 당시 치켜든 깃발과 그 운동의 진정한 의미 사이의 간격을 좁혀온 자기성찰의 역사이기도 하다. 70년대 이후 프랑스 지성계는 구조주의를 넘어서 행위자 중심의 다양한 이론들이 형성되었고 일상생활의 사회학과 사생활의 역사와 정치적 열정의 인류학 등 새로운 지적 흐름들이 형성되었다.

5월운동 당시 행위자들의 의미세계를 보다 생생하게 보여주는 것이 거리에 붙은 포스터에 나타난 구호들이다. "우리들 속에 잠자고 있는 경찰을 없애야 한다" 는 표어는 무의식 속에까지 자리잡은 검열과 통제를 타파하고 완전한 자유를 추구하려는 68세대의 의식을 보여준다.

"모든 권력을 상상력으로" 라는 구호가 그 뒤를 바짝 따른다. "보도블록을 들추어라!해변이 나타날 것이다" 라는 구호는 보도블록을 들어 경찰을 향해 던지라는 명령이라기보다는 일상을 질식시키는 현실의 껍데기를 벗고 본래적 자연으로 돌아가자는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현실적으로 되라. 그리고 불가능한 것을 요구하라" 는 모순적 표어 속에서 68세대는 현실적이면서 동시에 현실에 매몰되지 말 것을 주장한다.

1970년대 이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68년 5월 운동의 이념은 반핵평화운동과 '녹색당' 운동, '여성해방운동' '국경없는 의사회' '프랑스민주노동연맹' '리베라시옹 (일간지)' 등의 조직적 활동으로 표출되었다. 68세대는 프랑스 공산당이 반복적으로 주장하는 프롤레타리아 혁명의 담론에 더 이상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그들은 소외된 일상행활로부터 벗어나 새로운 정체성과 삶의 의미를 추구하였다. 자연과의 새로운 관계를 추구하는 생태주의, 여성의 권리와 남녀간의 새로운 관계 정립을 모색하는 페미니즘, 제3세계의 빈곤과 저개발의 원인을 선진국과의 관계에서 찾는 제3세계주의, 노동운동의 새로운 방향을 모색하는 자주관리주의 등이 68년 이후 그 모습을 구체화시킨 새로운 이념의 갈래들이다.

한 세대는 그들이 처한 공동의 역사적 상황 속에서 일정한 형태의 지적.도덕적 감수성을 공유한다.

68세대는 그 전 세대와 구별되는 공동의 체험과 감수성에 기반한 그들 세대의 지적.사회적 지향성을 보여주었다. 68세대는 프랑스 사람들이 스스로 '영광스런 30년'이라고 부르는 지속적 경제성장이 가져온 소비사회의 물질적 풍요 속에서 성장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현실과 타협하거나 그 속에 매몰되지 않고 새로운 사회를 지향하였다.

이제 그들은 50대가 되었다. 그들 중 일부는 혁명을 두려워하는 기성세대가 되었지만 다니엘 콩방디를 비롯한 68세대의 많은 사람들이 아직도 68년 정신의 실현을 위해 새로운 변화를 추구하고 있다. 치열한 80년대를 겪은 우리의 모래시계 세대가 보여줄 미래의 모습은 무엇일까?

정수복 (크리스천 아카데미 연구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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