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호 세상보기]최루탄은 영원한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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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최루가스가 안개처럼 퍼진다. 거리에서 뜯어낸 보도 블록이 총알처럼 날아간다. 다연장 발사기를 떠난 최루탄은 마치 속사포탄처럼 터진다. 눈물과 콧물.재채기로 숨이 막힌다.

반 (半) 복면의 젊은이가 쇠파이프로 우주복 전사의 방패를 두드린다.

거리는 순식간에 수라장으로 변한다. 아주 낯익은 장면 - 엊그제 일어난 시위대와 경찰의 충돌 광경이다.

김대중 (金大中) 정부는 2월25일 발족하고 5월1일 첫 '최루탄 사태' 를 맞았다. 종묘 앞에서 열린 민노총 노동절 대회에 참석한 노동자들과 학생들이 가두 행진을 시도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고용안정과 실업대책을 요구했다. 김영삼 (金泳三) 정부는 93년 2월25일 발족하고 5월18일 첫 최루탄 사태를 맞았다.

5.18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한총련 학생들이 연희동으로 가두행진을 시도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전두환.노태우 체포' 를 요구했다.

(그러고 보니 5월은 역사를 반복시키는 달이로구나. 계절의 여왕인 그대 5월이여, 이제 그만 심술을 멈춰라. 역사를 쳇바퀴에서 꺼내 신작로 위에 올려 놓으렴! 마법의 거울도 백설공주보다는 그대가 더 예쁘다고 한다) 내란.반란.군사정부가 물러나고 문민정부가 들어섰으면 이제 최루탄과도, 전투복과도 이별일줄 알았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근로자란 모호한 이름 대신 노동자란 명칭을 돌려준, 누구보다도 노동자와 친한 국민의 정부가 들어섰으면 최루탄 냄새는 사라질줄 알았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무엇이 잘못됐을까.

"잘못된게 없죠. 의.식.주의 충족을 바라는 인간의 욕구는 만족할줄 모릅니다. 욕구는 욕구를 낳고, 사회적인 긴장과 갈등은 끝이 없습니다. 결국 최루탄은 완전히 사라질 수 없는 것 아닌가요?" "그렇게 비약하려면 좀 더 적극적으로 이렇게 이해합시다. 즉 최루탄은 눈물을 흘리게 하고, 눈물은 우리 인생에 필요하고, 그러니까 최루탄은 있어야 된다고 말입니다. " "눈물보다는 웃음이 필요할텐데…. " "천만의 말씀. 눈물은 비극의 부산물이지만 인간 정서를 배설 (排泄) 하고 정화 (淨化) 시킵니다. 눈물을 흘린 사람들은 해방감을 느끼고 감정이 고양됩니다. 일에 의욕이 생깁니다.

눈물이 메마른 사회에 때때로 최루탄이 발사돼 감정의 카타르시스를 경험하게 하는 것, 그건 필요한 일입니다. " "그렇지만 돌멩이를 던지는 쪽이나 최루탄을 쏘는 쪽이나 그 일이 무슨 먹고 살 일이라고 그렇게 고생을 하는지 정말 딱합니다.

다치고 죽고 불까지 나면 무섭기조차 합니다.

외국 투자가들은 발길을 돌리고 경제위기 극복은 더 늦어집니다. 이래도 최루탄이 필요합니까?" "연민과 공포는 바로 눈물을 자극하는 수단입니다. 눈물의 효용이 인정된 이상 어쩔 수 없는 일이지요. " "당신은 보통 사람들의 고민을 이해하지 못하는군요." "선하지도 않고 악하지도 않은 보통 사람들이 자신들이 받아 마땅한 불행보다 더 큰 불행을 당하는 것 - 이것이 바로 비극의 본질입니다. 이것 또한 누선 (淚腺) 을 자극합니다. " "당신은 역사의 반복이 비극이라고 말하는 겁니까, 아니면 최루탄의 존재가 비극이라고 말하는 겁니까. " "결국 두가지 다 아닐까요. " "그러면 역사를 반복하는 이 시대의 한국인들은 비극의 주인공들이고, 최루탄은 그들을 돋보이게 하는 소도구 (小道具) 란 말인가요?" "탁월한 해석가이십니다. "

김성호 수석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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