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형윤교수 특별기고]구조개혁이 최우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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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최근 정부의 경제정책 기조를 두고 우려의 목소리가 적지 않다. 경제정책의 골간이 무엇인지 모호하다는 의문이 한쪽에서 제기되고 있는가 하면 정책수립.수행기관들간의 이견 (異見) 도 의견수렴의 차원을 넘어 혼란상태라고 말하는 이도 있다.

현 정권은 출범 초기 보여줬던 경제회생 의지가 여전히 확고하며 혼란처럼 비춰지는 것은 더욱 명쾌한 처방전을 찾기 위한 불가피한 과정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국제통화기금 (IMF) 사태가 발생한지 반년만에 뚜렷한 해결의 실마리를 찾기란 쉽지 않은 것 같고 국민의 IMF 극복 투지가 퇴색한 측면도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어쩐지 최근 들어 정부의 경제정책에 대해 불안하다는 얘기가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대다수의 국민은 정권 출범 초기 여론조사에서 IMF 극복에 대한 정부의 판단과 정책에 높은 신뢰를 보여왔다.

그것은 현 정권이 모든 정책수단과 정치력의 우선순위를 경제회생에 두고 실제 정책집행도 그 연장선상에서 이뤄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요즘 들어 경제외적 변수들의 영향력이 점점 고개를 들고 있다.

특히 다음달 실시될 지방선거를 앞두고 그같은 현상이 더 짙어지고 있어 정치중심의 경제운영이라는 구습이 재현되지 않을까 걱정이다. 현 여권은 여소야대 (與小野大) 의 국회구성을 돌파해야 한다는 부담감을 안고 있으며 자민련과의 공동정권이기 때문에 권력의 조화와 균형에 신경을 써야 할 일이 적지않을 것이다.

또 김대중 (金大中) 대통령을 비롯해 상당수 주요 각료가 정치인이라는 점도 경제정책 집행에 외생변수가 개입될 소지를 크게 하고 있다. 따라서 여러모로 정치적 고려에 의해 경제정책이 좌지우지되고 있다는 말이 나올 만한 정황인 것이다.

과거 우리는 집권여당이 화급한 일인데도 인기가 떨어질까봐 뒤로 미루거나 논란이 마무리되지 않은 사안을 성급히 결정해 버리는 정책수행의 우 (愚) 를 흔히 보아왔다. 야권 역시 정략적 차원에서 경제현안을 놓고 '비판을 위한 비판' 을 삼는 경우가 많았다.

여야를 막론하고 선거 직전 표를 의식한 '선심공세' 를 폈다가 선거가 끝난 뒤 경제가 그 후유증 때문에 애를 먹은 사례는 헤아릴 수 없이 많다. 경제의 흐름이 단기적인 정치권의 이해와 아무 상관관계가 없다는 점은 누구보다 정책집행자들이 더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좀 과장한다면 IMF시대에는 중심 잡힌 경제운영이 궁극적으로 정치를 잘 하는 길이라고도 할 수 있다.지금은 '경제가 곧 정치' 인 시대며 경제를 바로잡는데 정치권을 비롯해 모든 세력들의 힘이 모아져야 할 때인 것이다.

현 집권여당이 정치를 의식하지 않고 일관성있게 경제정책을 집행해 나가자면 일시적으로 인기와 표를 잃는 일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거기에 너무 연연해서는 안된다.

일과성 여론에 동요돼 주춤거리면 혼란이 가중되고 정부의 의지마저 의심받게 된다. 정책의 성과는 별로 거두지 못한 채 결국에는 국민의 지지마저 상실하게 될 것이다.

야당도 마찬가지다. 시급히 추진해야할 경제사안임에도 당략을 위해 발목을 잡고 나선다면 우리 경제의 위기해결은 더욱 멀어질 게 뻔하다.

정치권의 힘겨루기를 떠나 가장 강조돼야할 정책과제는 IMF의 핵심 프로그램인 구조개혁임에 틀림없다. 이와 관련해 S 피셔 IMF 수석부총재가 IMF발생 직후 "IMF의 프로그램은 상황변화에 따라 목표를 조정한다.

그러나 주요 구조개혁 분야에 대한 재협상은 생각할 수 없다" 고 한 말은 좋은 참고가 된다. 구조개혁은 한국경제가 그것 없이는 세계화된 경제질서 속에서 더 이상 안정성장을 이루기 힘든 절실한 과제라는 점을 국민은 잘 인식하고 있다.

현재 실직자들의 불만이 높게 쌓여가고 있으나 그들이 진정으로 걱정하는 일은 자신들의 고통이나 희생이 아무 대가도 얻지 못하고 끝나는 상황이 벌어질까 하는 것일 것이다. 현 정부는 따라서 구조개혁을 최우선의 정책과제로 삼고 각 분야에 대한 세부 실천에 있어 정치적인 이해에 좌우됨이 없이 일관성을 갖고 지속적으로 추진해주길 바란다.

변형윤 서울대 명예교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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