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시론

본디 한마음임을 자각하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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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1면

2009년 6월의 대한민국은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와 지속되는 북한의 군사위협으로 매우 어려운 시기를 지나고 있습니다. 안타까운 현실이기는 하지만 이 또한 사회 발전의 한 과정이며, 한 순간의 국가운명과도 같다고 생각합니다.

모든 사물과 현상은 상의상존(相依相存)하는 존재들입니다. 사회의 모든 사건과 사고는 연기적 관계로서 우리 모두는 직간접으로 연결되어 있기에 ‘공업(共業)’이라 합니다. 작금의 여러 갈등과 난제들에 있어 우리 모두는 원인인 동시에 공동의 책임을 나누어 가져야 하는 존재들입니다.

노 전 대통령의 죽음을 폄하하는 언행을 우려하지만, 슬픔이 자성과 성찰을 넘어서는 어떠한 상황도 분명코 경계합니다. 고인의 죽음이 헛되지 않도록 정치개혁과 사회발전의 기폭제로 승화시키려는 차분한 노력과 지혜가 필요합니다. 여야는 현 상황을 정치적으로 이용하거나 당리당략과 자파의 이익을 추구하려 해서는 안 되며, 누구든 자신의 이익을 위한 기회로 삼아서도 안 됩니다.

불교 대승기신론의 가르침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일심(一心), 즉 하나인 마음에 두 가지 문이 있으니, 하나는 진여의 문(心眞如門)이요, 다른 하나는 생멸의 문(心生滅門)입니다. 진여문이 고요하고 고요하여 모든 더러움이 사라진 마음이라면, 생멸문은 선(善)과 불선(不善)의 근본 원인이 되는 것으로 여러 조건들로 말미암아 일체의 현상을 빚어냅니다. 이 두 문이 각각 일체의 법을 총섭(總攝)합니다. 현상적으로 우리의 마음이라는 것은 그처럼 둘로 나뉘어 있으나 본래 한 마음입니다.’(依一心法으로 有二種門이니 云何爲二면 一者는 心眞如門이요, 二者는 心生滅門이니라. 是二種門이 皆各總攝一切法이니라. 此義云何면 以是二門이 不相離인 故니라)

국가의 운명을 결정짓거나 사회 발전을 담보해야 하는 사안을 두고 이념에 따라 국론이 양분되고 지역으로 나뉘는 일을 흔히 봅니다. 본디 한 마음이 진여문과 생멸문으로 나뉘듯 모든 현상에 대하여 각자는 ‘옳다’ ‘그르다’ 한 치 양보 없는 주장이 난무하고 서로 다투고 반목하는 일이 다반사로 일어납니다. 나의 주장만이 선이요, 상대방의 입장은 악으로 규정하기 때문입니다.

흔히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라는 말이 있습니다. 상대의 입장이 되어 보는 것은 이해, 즉 일심으로 다가가는 길입니다. 상대의 입장이 되어 보면 해결이 안 될 문제나 풀리지 않을 국정이 없습니다. 어려운 시기일수록 국가의 장래를 먼저 생각해야 합니다. 기업가들은 이익만을 추구하기 이전에, 노조는 자신들만의 주장을 펴기 이전에 몇 번이고 상대의 입장에서 이해하고 대화하려는 노력을 중단해서는 안 됩니다. 폭력은 또 다른 폭력을 잉태함도 깨달아야 합니다.

6·10 민주항쟁 스물두 돌을 맞습니다. 우리 역사에서 6월 항쟁은 민주주의와 개혁의 원천이요 원동력임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강산이 두 번 바뀌는 세월에도 우리는 그 뜨거웠던 여름날의 열정과 교훈을 제대로 담아내지 못했습니다. 지역주의의 뿌리는 악착같았고, 개혁들은 좌절되었습니다. 우리 모두의 책임이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사회지도층들은 무엇이 국가와 사회를 안정시키고 발전을 추구하는 것인지를 진솔하게 고심해야 합니다.

금년도 벌써 절반이 지나가고 있습니다. 2009년 6월의 대한민국은 커다란 폭탄 하나를 안고 있는 형국입니다. 이 폭탄을 제거하고 진정으로 화해와 상생의 큰 바다로 나아가고자 한다면, 나 자신부터 생멸과 진여가 본디 한 마음이듯 4500만이 본디 한 배를 탄 운명이요 한 마음임을 자각하는 것에서부터 출발하여야만 길이 보일 것입니다.

종하 스님 대한불교조계종 원로의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