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토요 이슈-패러디] 인터넷 곳곳 '패러디 휘날리며'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5면

▶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걸작 '모나리자'(左)의 싸구려 인쇄물에 콧수염을 덜렁 그려넣은 프랑스의 화가이자 조각가 마르셸 뒤샹의 1919년작 'L.H.O.O.Q'(右). 프랑스어로 빨리 읽으면 '그녀는 엉덩이가 뜨겁다(Elle a chaud au cul)'는 뜻이 된다. 거장의 권위를 뒤집은 '발칙함'이 돋보인다 해서 패러디의 수작(秀作)으로 꼽혔다.

▶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은 지난해 12월 1일자에 조지 W 부시 대통령을 패러디한 사진을 실었다. 오른쪽 뺨의 입술자국은 지지 여론을, 왼쪽 눈두덩의 검은 멍은 반대 여론을 뜻한다.

▶ 인기 영화 실미도의 포스터를 이용한 패러디물.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17대 총선 투표를 독려하기 위해 실시한 패러디포스터 응모전에 한 네티즌이 제출한 작품이다.

패러디 역사는 고대 그리스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남의 노래를 모방해 부르며 패러디가 태동했다. 역사에 기록된 첫 패러디는 그리스 시대 호머의 서사시 '일리아드'를 개작한 '개구리들과 쥐들의 전쟁'이다.

그리스 시대 무명 작가가 쓴 이 작품은 트로이 전쟁을 개구리와 쥐의 싸움에 비유해 해학적으로 비꼬았다. 이후 17세기에는 '돈키호테'가 출현했고 18세기 영국.프랑스.독일에서 수많은 작품이 나왔다. 이후 근대까진 문학의 한 형식으로 자리 잡았다. 사진이나 영화 등 모든 예술작품을 대상으로 한 본격적인 패러디는 정보기술(IT)이 발전한 1990년대 들어 등장했다.

국내에서 패러디 문화의 꽃이 피기 시작한 때는 98년.

억압됐던 정치풍자의 빗장이 풀리던 시기였다. 거기에 불을 댕긴 게 인터넷 패러디 신문 딴지일보다. 국회의원이 졸지에 '여의도 마담'이 되고 '제비'로 전락하는 뼛속 통쾌한 풍자는 네티즌들을 골수 패러디팬으로 만들었다. 서울대 홈페이지를 비튼 '구라대학교', 청와대를 한식당으로 비꼰 '청기와'같은 사이트도 이즈음 등장했다. 이전에도 코미디.CF.연극 등에선 패러디를 요리조리 써먹었다. 그러나 패러디는 최근 5~6년 사이 인터넷을 만나 진화를 거듭했다.

일부 전문가들은 우리나라에서 패러디가 성행하는 이유의 하나로 창의력과 기술을 가진 'IT 이태백'들의 왕성한 활동을 꼽고 있다.

패러디의 주류는 세 가지. 2002년 장안의 화제였던 배칠수씨의 '엽기 DJ'시리즈는 정치 패러디다. 근래 불법 대선자금 수사 때 유행한 정치 무협극화 '대선자객'도 이 부류다.

반면 인기 드라마 대장금을 패러디한 잡지표지 '월간 궁녀' 같은 건 팬들이 만든 연예물에 속한다. 수많은 변종 패러디를 양산한 '딸녀(딸기 들고 있는 여자)'나 '개죽이(대나무에 매달린 강아지)'같은 합성사진은 엽기 감각의 유머 패러디였다.

초기 패러디는 짤막한 비꼬기식 코멘트가 많았다. 요즘은 점차 스토리가 가미된 '작품'들이 많아진다. 그래야 손님을 끌기 때문. 그 형태도 단순한 사진합성에서 동영상 등으로 진화하고 있다.

미국은 '총알 탄 사나이(88년)'같은 영화 등을 거친 뒤 인터넷 보급과 함께 패러디가 퍼졌다.

빌 클린턴이나 조지 W 부시 같은 거물 정치인, 백악관 등을 풍자한 게 대표적이다.

최형규.김준술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