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급점검-환란 책임 누구에 있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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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검찰의 외환위기 수사가 진행되면서 환란의 원인과 책임에 대한 논란이 분분하다. 수사 초점은 누가 처음 보고했고, 누가 묵살했나 등에 주로 맞춰져 있다.

◇IMF지원 검토는 누가 언제 시작했나 = 97년 10월27일 한은이 보고서를 통해 처음 제기했다. 그러나 한은도 적극적으로 IMF로 가자는 쪽은 아니었다. '외환위기 발생시 IMF.국제결제은행 (BIS) 등으로부터 긴급자금조달' 이라고만 돼 있다. 당장 위기상황이므로 IMF에 지원을 요청하자는 것이라기보다는 다소 톤이 약한 가정적인 표현이었다.

◇부총리가 이를 무시했나 = 감사원은 한은이 10월28일자 보고서에서 건의한 내용을 姜부총리가 대통령에게 제대로 전달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또 11월9일 대통령에게 보고할 한장짜리 보고서에 재경원 실무자들이 IMF지원요청 문구를 넣었으나 姜부총리는 이 대목을 삭제하라고 지시했다. 이를 두고 실무자들은 姜부총리가 IMF지원요청을 반대하는 것으로 받아들였다.

姜부총리는 이에대해 "삭제지시를 했던 것은 사실" 임을 시인하면서 "그러나 그 지시는 보안을 지키기 위해 구두로만 보고하려고 문서에서 제외시킨 것" 이라고 해명하고 있다. 姜부총리는 다음날인 10일 IMF지원요청을 검토중이라고 대통령에게 구두보고했다.

◇대통령에 대한 첫 보고는 언제였나 = 김영삼 (金泳三) 대통령이 IMF지원요청에 대한 보고를 처음 받은 때는 11월8일이다. 이날 金경제수석이 IMF지원요청을 검토하고 있다는 사실을 처음 보고했다. 또 10일에는 姜부총리도 대통령에게 이를 보고했다. 金대통령은 "IMF지원요청에 대해 보고받은 바 없다" 고 말하기도 했으나 姜부총리나 金수석은 "여러 차례 보고했다" 고 주장했다.

◇공식발표는 언제, 어떻게 하기로 했나 = 11월18일 밤 姜부총리와 金수석은 19일 대통령에게 최종 보고 후 공식발표키로 결정했다. 발표형식은 따로 문서를 만들지 않고 姜부총리가 외환위기종합대책을 발표하면서 기자의 질문에 답변하는 형식을 취하기로 했다. 따라서 19일 대책발표문에는 IMF지원요청이 포함돼있지 않았다.

姜부총리는 19일 오전 사표가 수리돼 물러났고 대책발표는 임창열신임부총리가 맡게 됐다. 姜부총리는 사표수리 직후 루빈 미 재무부장관에게 전화해 IMF지원요청에 대한 정부방침을 최종 확인했고 협조를 당부했다. 그러나 林부총리가 취임회견에서 "IMF지원은 필요하지 않다" 고 부인해 문제가 꼬였다.

◇IMF지원요청의 공식결정 시점에 대한 시비 = 김인호전경제수석에 따르면 林부총리는 17일 오전 경제장관회의 직후 金대통령을 단독면담했다. 당시는 통산장관 신분이었다. 면담이 끝나자 林장관은 金수석 사무실에 들러 "IMF지원 요청을 한다면서요" 라고 물었고 金수석은 그동안의 진척상황을 자세히 설명해줬다는 것이다. 정황만으로 보면 金대통령이 林장관의 신임부총리 기용을 결정하고 이를 통보해주면서 IMF지원요청에 대해 언질을 준 것으로 추측된다.

이에 대해 林부총리는 취임 당시 IMF지원요청에 대해 인수인계 받은 바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IMF지원요청에 대한 정부차원의 결정은 이미 13일 이뤄졌고 14일에는 대통령의 재가까지 난 상태였다.

남윤호 기자〈yhna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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