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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골프장 예찬

중앙선데이

입력

"중앙선데이, 디시전메이커를 위한 신문"

최근 경기도의 한 골프장에서 라운드할 기회가 있었다. 옷을 갈아입은 뒤 골프백이 실려 있는 카트에 다가가 몸을 풀려는 순간 도우미 한 분이 상냥하게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여기까지는 여느 골프장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우리나라 캐디가 친절한 게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지 않은가. 깜짝 놀란 건 그 다음이었다. 준비물을 챙기기 위해 주섬주섬 골프백을 뒤지려는데 골프공과 장갑·티펙이 가방 위에 가지런히 놓인 채 주인을 기다리고 있었다. 도우미가 라운드하는 플레이어를 위해 미리 준비물을 챙겨 꺼내 놓은 것이었다.

도우미의 감동 서비스는 라운드가 시작된 뒤에도 계속됐다. 동반자의 공이 OB(Out of bounds) 구역에 떨어진 것이 확실한데도 캐디는 절대로 단정적으로 말하지 않았다.
“가 봐야 할 것 같아요. 만일을 위해 잠정구를 하나 치셔도 괜찮습니다.”

도우미는 과도하게 굽실거리지 않았다. 기품을 지키면서도 플레이어의 기분을 헤아리는 말로 분위기를 북돋웠다. 덕분에 유쾌한 분위기 속에 라운드를 끝마칠 수 있었다. 도우미의 명찰을 눈여겨봤다. 김·지·혜. 서원밸리 골프장에서 일하는 이다(이름을 밝힌 것이 실례가 되지 않길 바란다).

친절한 캐디 서비스는 우리나라 골프장에서만 찾아볼 수 있는 ‘대한민국 명품’이다. 이건 필자의 생각이 아니라 스카이72 골프장 지배인 오방렬씨의 말이다.

아마추어 골퍼 사이에 요즘 유행하고 있는 내기 방식은 단연 ‘신 라스베이거스’다. 퍼팅을 하고 홀아웃한 뒤에야 화투를 뒤집어 편을 가르는 방식인데 신종 내기를 위해 화투를 갖고 다니는 캐디도 봤다.

누가 지었는지 이름도 그럴싸한 ‘그늘집’도 우리나라 골프장에서만 볼 수 있는 명품이다. 특히 무더운 여름날이면 그늘집은 오아시스로 변한다. 음료수와 맥주는 물론 차디찬 수박까지 맛볼 수 있는 건 대한민국 골프장이 아니면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주방장이 정성 들여 만든 음식도 빼놓을 수 없다. 핀크스의 우동은 국물이 끝내준다. 나인브릿지의 자장면에는 미셸 위가 엄지손가락을 치켜들었다. 지금은 사라졌지만 강촌 골프장의 강촌탕도 찾는 이가 많았다. 골프장에 딸린 목욕탕은 우리나라와 일본에서만 볼 수 있는 독특한 시설이다. 골프 선진국을 자처하는 미국엔 간혹 샤워 시설은 있어도 목욕탕이란 건 눈 씻고 찾아봐도 없다. 알몸으로 탕 안에서 이야기를 주고받다 보면 처음 만난 사이라도 금세 가까워지게 마련이다.

이뿐인가. 아시아나·크리스탈 밸리는 온라인을 통한 실시간 교통정보 안내 서비스를 하고 있다. 어느 길이 막히는지, 어느 길로 가면 빠른지 휴대전화 메시지로 알려주는 골프장도 있다.

강원도 파인리즈 골프장에 가면 정보기술(IT) 강국 대한민국의 위력이 실감난다. 라커룸의 개인 사물함 문마다 작은 LCD 화면이 달려 있는데 이곳을 통해 캐디의 메시지가 전달된다. “○○○님, 오늘 하루 즐거우셨습니까. 다음에 또 뵙기를 바랍니다.”

이야기를 하다 보니 대한민국 골프장 예찬이 돼 버렸다. ‘캘리포니아 골프’는 그동안 우리나라 골프장의 문제점을 줄기차게 지적해 왔다. 장점은 살리고, 문제점은 고쳐서 대한민국만의 독특한 골프장 문화를 만들어 나갔으면 하는 바람이다.

정제원 J-GOLF 취재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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