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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만난 '크로스오버'…정통클래식 '몰락'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6면

끝간데 없이 벼랑으로 떨어지고 있는 클래식 음반시장의 돌파구로 떠오른 크로스오버. 클래식 음악의 죽음을 자초하는 지름길인가 아니면 클래식의 몰락을 저지하는 마지막 보루인가.

'뉴스위크' 최근호에 따르면 클래식 음악의 세계 음반시장 점유율이 92년 3.7%에서 97년 2.7%로 떨어졌다. 필립스 레이블이 연간 발매하는 클래식 음반도 5년전의 절반 수준인 50장으로 줄었다. 그중 40%가 클래식과 팝이 만나는 크로스오버 앨범이다.

BMG 클래식은 60%, 소니 클래시컬은 50% 이상이 크로스오버 앨범이다. 이제 크로스오버는 클래식의 뿌리마저 흔들 정도의 위력으로 클래식 음반시장을 강타하고 있다.

현재 빌보드 클래식 차트의 1위를 달리고 있는 앨범은 시각장애인 가수 안드레아 보첼리의 '아리아' .6주동안 1위에 머물다 2위로 내려 앉은 앨범도 팝가수 마이클 볼튼의 '아리아' 다.

내용적으로 크로스오버가 클래식 차트를 점령한 상태. 한물간 테너 파바로티.도밍고.카레라스는 놔두고라도 차세대 테너로 떠오른 로베르토 알라냐와 호세 쿠라는 어디로 가고 팝가수들이 녹음한 오페라 아리아가 불티나게 팔리고 있단 말인가.

싱가포르 태생의 영국 바이올리니스트 바네사 메이 (19) 도 비발디의 '사계' 에 테크노 사운드를 곁들인 앨범을 오는 9월 출시할 예정. 이 앨범에서 바네사는 도나 서머의 디스코 히트곡 '사랑을 느껴요' 를 직접 부른다.

지난 95년 출시된 '바이올린 플레이어' 는 국내에서 50만장, 세계적으로 3백20만장이 팔렸고 '클래식 앨범I' 은 국내에서 13만장, 세계적으로 50만장이 팔려 지금까지 가장 짧은 기간 내에 베스트셀러에 오른 클래식 앨범으로 손꼽힌다.

셀린 디옹의 프로듀서가 제작을 맡았던 팝앨범 '스톰' 도 국내에서 10만장이 팔려나갔다. '금발의 바네사 메이' 의 출현이라며 화제를 모았던 핀란드 출신의 바이올리니스트 린다 브라바 (28) 도 크로스오버 대열에 합류했다. 그녀는 '플레이보이' 4월호 표지모델로 등장, '클래식의 파멜라 앤더슨' 임을 입증했다.

브라바는 최근 EMI독일과 각 2장씩의 클래식.팝 음반을 내기로 계약했다. 폴 매카트니가 교향곡 '선돌' 을 작곡하고 그래미상 시상식에서 팝가수 아레사 프랭클린이 푸치니의 '투란도트' 중 '공주는 잠 못 이루고' 를 부르고 팝가수 마돈나는 최근 바이올린을 배우기 시작하는 등 팝가수들의 클래식 '진출' 도 눈길을 끈다.

클래식 아티스트가 팝앨범을 내고, 팝가수가 오페라 아리아를 녹음하는 현실이다. 음악에서 크로스오버는 어제 오늘의 이야기는 아니다.

오스트리아 태생의 바이올리니스트 프리츠 크라이슬러 (1875~1962) 도 1927년 팝가수 어빙 벌린의 노래를 녹음한 적이 있다.

문제는 전세계적으로 예술교육이 등한시되고 있는 마당에 오늘날의 청중이 정통 클래식에 대한 흥미를 점점 잃어가고 있다는 점이다. 대신 클래식도 아니고 팝도 아닌 '얼치기 음악' 에 입맛이 길들여지고 있다.

게다가 젊은 세대의 클래식 연주자들은 자신이 팝음악을 좋아하기 때문에 크로스오버 전선에 나선다는 사실이다.

바네사 메이가 런던왕립음악원 졸업후 스스로 전자 바이올린을 집어든 것이나 피아니스트 장 이브 티보데가 라흐마니노프.라벨에 이어 빌 에반스의 재즈앨범을 녹음한 것은 단순히 떼돈을 벌기 위해서만은 아니다.

이장직 음악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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