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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 새 휘발유 12% 떨어졌지만, 신선식품 15% 올라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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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7호 05면

남편과 세 자녀를 둔 주부 민수정(38)씨는 요즘 장을 보는 시간이 길어졌다. 이것저것 가릴 것 없이 모두 값이 올라 식탁에 올릴 먹을거리를 고르기가 힘들어졌기 때문이다. 허리띠를 동여맸지만 민씨네 한 달 식비는 1년 전보다 10만원 이상 많아진 55만원에 이른다. 민씨가 피부로 느끼는 물가 상승률은 두 자릿수다.

물가상승률 2%대인데, 장바구니 더 가벼워진 까닭

체감 물가는 앞으로가 더 걱정이다. 이달부터 서울 택시 기본료가 1900원에서 2400원으로 올랐다. 국제선 항공요금도 최고 15% 올랐거나 인상을 앞두고 있다. 전기·가스 요금도 ‘현실화’될 예정이다. 그나마 물가를 떨어뜨리는 데 기여해 온 국제 원자재 가격도 다시 슬금슬금 오르고 있다. 지난해 연말 31달러까지 떨어졌던 국제 유가(서부텍사스유 기준)는 5일 68.44달러까지 반등했다. 옥수수·콩 등 농산물 값도 올 들어 많게는 20% 이상 뛰어올랐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의 6배인 물가 상승률이 더 높아질 가능성이 크다.

이마트 29개 품목 평균 7% 올라
하지만 정부의 공식 통계는 딴판이다. 지난주 통계청은 5월 소비자물가가 2.7% 오르는 데 그쳐 상승률이 20개월 만에 3% 아래로 떨어졌다고 밝혔다. 의·식·주에 직접 관련된 152개 품목으로 구성된 생활물가지수 상승률은 1.8%로 더 낮았다. 체감 물가와 왜 이렇게 다를까. 급기야 지난 3일 정부 과천청사에서 열린 위기관리대책회의에서 통계의 신뢰도가 도마에 올랐다.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은 이날 “정부 통계가 국민 체감과 다르다는 평가가 있다. 신뢰를 확보할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체감 물가와 지표 간의 괴리를 확인하기 위해 중앙SUNDAY가 대형 할인점 이마트에 의뢰해 주요 생필품의 판매가격 변동을 알아봤다. 이른바 ‘MB 품목’으로 불리는 52개 생필품 중 유류·교통비 등 할인점에서 취급하지 않는 품목을 제외한 29개 품목을 고른 뒤 판매량이 가장 많은 대표상품의 가격을 1년 전과 비교했다. 조사 결과 3분의 2인 19개 품목의 가격이 1년 전보다 오른 것으로 나타났다. 이 중 12개 품목은 인상률이 10%를 넘었다.

가장 많이 오른 것은 배추였다. 한 통에 1년 전 980원 하던 게 5일 1480원에 팔려 51% 상승했다. 대파 한 단은 36%, 우유(서울우유 1L)는 23%씩 값이 뛰었다. 쇠고기와 설탕·빵·달걀·식용유·콩나물·세제 등도 두 자릿수 상승률을 기록했다. 표시가격을 올리지 않은 대신 양이 줄어든 품목도 적지 않았다. 생고등어 한 마리 값은 1년 전과 같은 3680원이지만 450g에서 400g으로 씨알이 작아졌다. 풀무원 ‘통째로콩한모두부’는 420g에서 340g으로 용량을 줄이면서 1700원에서 1750원으로 인상됐다. 표시 가격은 50원 차이지만 실제 인상률은 25.8%에 달한다. 샴푸(엘라스틴)와 생리대(화이트 프리미엄 중형)도 같은 방법으로 가격을 각각 18.4%와 14.5% 올렸다.

값이 떨어진 품목은 6개 품목에 불과했다. 양파(8개 한 망)가 2580원에서 1980원으로 28% 떨어졌고 사과(-18%)·밀가루(-14.9%)·마늘(-14.7%)·돼지고기(삼겹살, -9.6%)·무(-5.6%)도 가격이 떨어졌다. 오르고 내린 품목의 숫자만 봐도 정부 통계와는 거리가 있는 셈이다. 29개 품목의 가격 등락폭은 평균 7.2%였다. 품목별 소비 비중을 반영해 가중 평균하는 정부 지표와 단순 비교할 순 없지만 주부들의 푸념에 근거가 없지 않다는 방증이다.

MB물가지수 올들어 폐기
통계청은 난감해한다. 수천 가지 품목을 조사하다 보니 개인이나 분야별 체감 물가와 차이가 있을 수 있지만 객관성을 의심받는 건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송성헌 물가통계과장은 “정확히 1년 전 가격과 비교하는 물가 통계와 달리 사람들은 뇌리에 강하게 남아 있는 과거의 주관적인 가격을 비교 기준으로 삼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휘발유 값이 대표적인 경우다. 1년 전 L당 1907원이던 휘발유 값이 5일 1563원으로 떨어졌지만 운전자들은 여전히 글로벌 경제위기 이전의 가격인 L당 1200~1300원과 비교해 비싸다고 느낀다는 것이다.

1년 전과 비교해 물가 상승률이 둔화된 게 주로 유류 값 하락 때문이라는 점도 체감 물가와의 괴리를 키우는 요인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52개 생필품의 5월 물가는 휘발유(-12.7%)·경유(-22.9%)·등유(-30.9%)·LPG(-14.5%) 등 유류를 제외하곤 대부분 상승했다. 특히 장바구니와 밀접한 신선식품은 15.7%나 올랐다. 통계 작성 과정에서 수백 가지 품목과 이들이 뒤섞이다 보니 쉽게 이해하기 어려운 수치가 나온 것이다.

비교 시점인 1년 전이 물가가 이미 크게 뛴 다음이었다는 사실도 영향을 준다. 기저 효과(base effect)다. 라면 중 가장 많이 팔리는 신라면은 지난해 2월 650원에서 750원으로 15.4% 인상됐다. 새우깡도 700원에서 800원으로 올랐다. 이들 품목의 전년 대비 상승률은 0%지만 소비자는 여전히 비싸졌다고 느낀다. 떨어진 것으로 조사된 밀가루 값도 마찬가지다. 지난해 6월 이전 제분회사들은 이미 두 차례에 걸쳐 출고가격을 30% 이상 올려놓은 상태였다.

정부도 이 같은 점을 감안해 통계의 정확도를 높이기로 했다. 현장 조사를 강화하고 조사요원의 전문성을 강화한다는 계획이다. 하지만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물가 관리에 대한 의지라는 지적이 많다. 대통령 지시로 정부가 지난해 부랴부랴 발표하기 시작한 MB물가지수는 올 들어 폐기됐다. 다른 물가보다 상승률이 더 높게 나타나는 데 대해 정부가 부담을 느꼈기 때문이다. 김우찬 KDI 교수는 “정부 내에서 체감 물가를 지적하는 목소리가 나오는데 이성태 한국은행 총재는 ‘금융 완화 기조를 좀 더 유지해도 물가 상승 압력이 거의 없다’고 한다”며 “시장에 일관된 신호를 보내고 담합 억제와 경쟁 유도로 물가 안정을 도모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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