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오르는 유로시대]1.'단일통화' 걱정 반 기대 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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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99년 1월1일부터 유럽 11개국에 단일통화 (유로)가 도입된다. 이에 따라 새 통화에 대한 불안감과 신 (新) 경제에 대한 희망이 교차하고 있다.

단일통화 참가국을 공식 확정하기 위해 다음달 2일 열리는 유럽연합 (EU) 특별정상회담을 계기로 유로가 통용되는 '유로랜드 (Euroland)' 준비상황을 3회에 걸쳐 살펴본다.

파리 근교 라데팡스에 사는 프랑스 가정주부 파야르 (38) 는 예전과 달리 물건을 살 때마다 가격표시를 꼼꼼히 살핀다. 예컨대 하나에 3프랑 (7백원) 하던 '바게트' (막대기빵) 를 살 때 예전 같으면 3.5프랑과 3.8프랑의 차이를 대수롭지 않게 여겼지만 유럽 단일통화시대가 되면 사정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유로가 도입되면 소수점 이하라도 값 차이가 커요. 0.3프랑이면 별게 아니지만 0.3유로라면 지금 돈으로 2프랑 (4백70원) 이나 됩니다." 그녀는 1유로가 6.5~6.7프랑이 된다는 것을 정확히 알고 있다.

그러나 파야르와 같은 경우는 프랑스 전체 성인 인구의 36%에 불과하다 (IFOS의 최신 여론조사) .유로시대를 실감하고 대비하는 사람이 아직은 많지 않다는 얘기다.

그보다는 불안해 하는 사람이 훨씬 많다. 연금생활자 장 필립 할아버지 (69.파리 거주) 도 아무 문제없이 잘 지내고 있는데 정치인들이 공연히 일을 불편하게 만들었다고 불만이다.

유럽 11개국이 같은 돈을 씀으로써 경제통합이 가속되고 유럽 전체경제의 경쟁력이 강화돼 결국 유럽시민 모두에게 이익이 된다는 정부의 달콤한 설명과 일반인들이 느끼는 현실적 불안감 사이에는 상당한 괴리가 있는 셈이다.

특히 독일인들이 느끼는 불만은 심각하다. 독일인의 53%가 유로의 안정성에 회의적이고 (일간 한델스블라트지) , 단일통화에 부정적인 여론도 62.4%나 된다 (ZDF방송 여론조사) . 그러나 주사위는 던져졌고 기업.은행.정부 등 각 경제주체는 나름대로 대비책 마련을 서두르고 있다.

이중 가장 바쁜 곳은 은행. 당장 내년부터 유로계좌 개설과 유로수표 발행이 가능해지고 본인이 원하면 신용카드 계산도 유로로 할 수 있다. 주식이나 채권거래는 유로가 원칙이다.

대형 유통업체들도 빼놓을 수 없다. 이미 자국통화와 유로 두가지로 가격을 표시하는 곳이 늘고 있다. 내년부터 세금이나 각종 공과금도 유로로 낼 수 있다.

유로로 물건값을 표시하게 되면 가격차가 일목요연해져 가격평준화가 유럽 전역에 걸쳐 급속하게 진행될 전망이다. 인터넷을 통한 전자상거래와 원거리 통신판매가 활기를 띨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프랑스 통신판매회사인 르두트는 이미 카탈로그에 유로를 도입했다. 상품가격만큼은 아니겠지만 나라별 임금격차도 해소되는 방향으로 나갈 전망이다.

각국 통화와 유로가 병존하는 내년부터 2001년까지 3년간은 유럽의 각 경제주체가 유로를 사용하는 적응.훈련기간이다. 유로랜드의 조기정착 여부는 각 경제주체가 새로운 통화가치체계에 얼마나 잘 적응하느냐에 따라 판가름날 것으로 보인다.

파리 = 배명복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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