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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촌라이브극장 '벗', 더 나은 무대약속하며 일시적 문닫는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3면

유흥가의 불빛만 출렁이는 서울 신촌. 이곳에서 유일한 문화공연장으로 고군분투하던 라이브극장 '벗' 이 5월초 문을 닫는다. 경영에 실패한 탓만은 아니다.

80년대적 이상주의가 90년대의 현실에 패퇴한 형국이랄까. 이곳은 96년 4월 민청련등서 학생운동을 펼쳤던 이원영 (36) 대표등 '386세대' 들이 '그 시절 꿈꿔왔던 문화를 계속 이어나가자' 는 취지에서 만들었다. 극장측은 신세대들에게 희망과 건전한 문화를 전달하기 위해 민중가요.록 등 다양한 음악을 발굴하려 노력해왔다.

메이데이.천지인.노래마을 같은 민중음악 집단뿐 아니라 시나위.신촌블루스.김목경 블루스밴드.장필순 등이 공연을 가졌다. 모두 음악적 역량은 뛰어나지만 개성이 뚜렷한 음악인들이라 흥행에는 별 도움이 되지 않는 공통점의 소유자들이었다. 반면 상업성이 짙거나 서로 공감대가 형성되지 않는 음악인에게는 무대를 제공하지 않았다.

또 몇몇 뜻있는 가수의 연주회나 자선공연의 경우는 대관료를 깎아주거나 아예 받지 않기 일쑤. 한마디로 문화적 공동체를 만들고자 했던 것이다.

이런 고집이 지속되다 보니 누적부채는 산더미로 늘었다. 가뜩이나 대학로나 홍대앞에 비해 지리적 입지도 불리했다. 2년여 궁리의 산물로 버티기 방안을 그리고 나니 IMF한파로 결정타. 더 지탱하기 어려워졌다. 결국 28~30일의 '프리다칼로' , 5월 1~3일 열리는 '마이 베스트 프렌드' 의 공연을 마지막으로 이 극장은 한시적으로 문을 닫게 된다.

극장측은 같은 건물 옥상을 이용, 올해안에 새로운 무대를 꾸밀 계획을 갖고 있다. 오히려 이번의 위기를 교훈삼아 더 나은 무대를 꾸미려는 욕심이다. "우리의 이상이 잘못된 것이라 생각지는 않습니다. 우리가 현실을 잘 몰랐던 탓에 패배한 거죠. 하지만 시행착오를 거쳤으니 앞으로는 더 잘할 수 있지 않겠어요. " 낙관적으로 말하는 이원영 대표의 말에서 80년대의 이상주의가 다시금 느껴진다.

강찬호·문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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