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 즐겨 읽기] 미국 FDA를 만들게 한 ‘지옥의 도축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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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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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튼 싱클레어 지음, 채광석 옮김
페이퍼로드, 608쪽, 1만4800원

지옥 풍경이 궁금하다면 이 소설을 펼쳐보길 권한다. 배경은 지금으로부터 꼭 100년 전 시카고 도축장. 드림 아메리카를 찾아 리투아니아에서 건너온 유르기스 일가를 맞은 건 인간이길 포기하게 하는 삶의 조건이었다. ‘한달 12달러로 내집 마련’이란 광고를 보고 가진 돈을 모두 털어 할부주택을 구입했지만 계약서에는 덫이 층층이 놓여 있었다. 집을 빼앗기지 않으려면 14살짜리 꼬마까지 빛도 들지 않는 방에서 시간당 5센트짜리 일꾼이 되어야 했다. 겨울엔 난방이 되지 않아 소와 돼지의 피에 젖은 노동자들의 손발은 이내 얼어버렸다. 한여름엔 “한 세대 동안이나 묵었던 냄새가 열에 의해 피어올랐”다. 결핵에 걸린 소, 온 몸에서 고름이 튀는 소 등 온갖 병든 가축들의 묵은 찌꺼기에 반품된 썩은 버터까지 화학약품 처리를 해 상품으로 만들어내는 더러운 작업장. 손씻을 곳도 없어 밥을 먹을 땐 그만큼의 생피를 섭취할 수 밖에 없었다. 병을 얻은 노동자들은 각혈하며 죽어갔다. 그러나 일자리를 원하는 노동자들의 행렬은 끝없이 이어졌고, 해고되는 건 순식간이었다. 하나같이 병을 얻은 가족들은 병원에 갈 돈도, 시간도 없어 약을 먹었지만 십중팔구 가짜였다. 그들은 벗어날 수 없는 지옥의 수레바퀴에 걸려든 것이다.

100년 전 발표된 이 소설은 미국 전역을 발칵 뒤집어놨다. 사람들의 초점은 열악한 노동 환경보다는 비위생적인 식품 가공 현장에 쏠렸던 모양이다. 이 소설로 인해 식품의약품위생법이 제정되고 미국식품의약국(FDA)가 설립됐다. 한 세기 전의 모습이라지만 지금 현재 어디선가 벌어지는 풍경인지도 모른다. 값싼 노동력을 찾아 더 많은 이익을 내려는 자본의 탐욕은 수그러들지 않았으니까.

이경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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