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바마 “미국과 무슬림의 새로운 시작 위해 여기 왔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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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미국과 이슬람 간의 ‘새로운 시작’을 선언했다. 오바마는 4일 이집트 카이로대학에서 세계 15억 무슬림(이슬람교도)을 향해 화해의 메시지를 전하는 역사적 연설을 했다. 그는 연설에서 “상호 이해와 상호 존중에 바탕을 둔 미국과 무슬림 간의 새로운 시작을 모색하기 위해 이곳에 왔다”며 “미국과 이슬람은 배타적 존재도 아니며 경쟁할 존재도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AP·AFP·로이터 통신 등 주요 외신은 “오바마가 고대 아랍 문명의 중심지에서 미국과 무슬림 사이의 균열을 메우려는 시도에 나섰다”며 “이슬람 세계와 미국 사이에 새 역사의 장이 쓰였다”고 보도했다.

오바마는 “미국과 무슬림 사이의 긴장의 시대를 목도하고 있다”며 말문을 열었다. 그는 “이 같은 긴장이 역사적 폭력에 기인한다”며 서구의 과오를 인정하고 무슬림을 다독이는 모습을 보였다. 무슬림의 인권을 부정한 식민주의와 이슬람 국가들의 열망을 반영하지 않은 냉전시대가 미국과 이슬람 세계의 긴장을 야기했다는 것이다. 그는 또 “이슬람은 평화를 고무하는 세력인 만큼 미국 대통령으로서의 책임은 무슬림에 대한 부정적 인식과 싸우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미국을 ‘이기적인 제국’으로 생각하는 편견도 버려달라고 당부했다. 아버지가 무슬림 케냐인이며 이슬람 국가인 인도네시아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오바마에 대한 아랍권의 기대를 반영하듯 연설 중간중간에 자신의 개인사를 언급하기도 했다. 오바마의 연설은 주요 방송과 다양한 매체를 통해 전 세계에 생중계됐다. 연설문은 백악관 홈페이지에 영어와 아랍어·페르시아어 등 13개 국어로 제공됐고, 페이스북·트위터 등 인터넷 웹사이트에도 게재됐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문제와 관련해서는 ‘2개의 국가’ 해결책이 다시 한 번 강조됐다. 오바마는 팔레스타인은 이스라엘에 대한 폭력을 포기해야 하며, 이스라엘은 유대인 정착촌 건설을 중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그는 “팔레스타인인이 견딜 수 없는 상황에 처해 있음은 명백하다”며 “그들의 열망을 저버리지 않을 것”이라고 언급했다.

이란 핵문제에 대해서는 “어떤 나라도 ‘평화적 핵개발’ 권리를 가지고 있다”고 했지만 “중동 지역의 핵무기 경쟁은 이 지역과 세계를 위험에 몰아넣을 수 있는 만큼 이를 막기 위한 결정적 순간에 이르렀다”고 밝혔다. 아프가니스탄 전쟁 등에 대한 무슬림의 부정적 시각을 불식시키려는 듯 오바마는 “미국은 아프간에 군대를 지속적으로 주둔시킬 의사가 없으며 항구적 군기지를 만들 생각도 없다”고 밝혔다. 다만 테러리스트를 제거하기 위한 노력은 계속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와 함께 오바마는 “어떤 국가도 다른 나라에 자국의 체제를 강요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하면서 전임자인 조지 W 부시 행정부와 선을 긋기도 했다. 경제 발전과 관련해서는 한국의 예를 들며 “한국과 일본은 독특한 문화를 유지하며 경제를 발전시켰다”며 이슬람 국가들이 정체성을 지키며 경제 발전을 이뤄낼 수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하현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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