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비정규직 실업대란 코앞인데 국회는 정쟁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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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2면

비정규직 근로자들이 일자리에서 내몰려 대량실업 사태를 빚을지 모르는 운명의 시간이 한발 한발 다가오고 있다. 비정규직보호법에 따라 다음 달부터 2년 이상 같은 직장에서 비정규직으로 일한 사람은 정규직으로 전환해야 한다. 법이 의도한 대로 비정규직이 모두 정규직으로 전환될 수 있다면 그보다 바람직한 일은 없다. 그러나 현실은 비정규직이 정규직으로 전환되기보다는 계약해지될 공산이 크다. 경기가 괜찮았을 때도 비정규직이 정규직으로 전환되는 비율이 낮은 판에 경제위기 속에 비정규직이 정규직이 될 가능성은 더욱 낮아졌기 때문이다. 오는 7월로 ‘2년 이상 근무’ 조항에 해당하는 비정규직 근로자는 모두 70만~100만 명으로 추산된다. 이들 중 상당수가 계약해지될 처지에 놓였으니 올여름 실업대란은 피할 수 없다. 이미 100만 명에 이른 실업자에 다시 그만한 수의 실업자가 한꺼번에 쏟아져 나올 경우 실업급여가 바닥나는 것은 물론 심각한 사회불안을 부를 우려마저 있다.

비정규직 근로자를 보호하겠다고 만든 비정규직보호법은 이제 이들의 일자리를 빼앗는 흉기가 돼버렸다. 운명의 7월이 오기 전에 법을 고치지 않으면 이 흉기가 비정규직 근로자들의 일자리를 위협하는 상황을 피할 수 없다. 정부는 지난 4월 현행 2년인 비정규직 고용시한을 4년으로 늘리는 내용의 비정규직법 개정안을 내놨다.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하는 근본대책은 아니지만 당장 실업자로 전락하는 것만은 막아 보자는 응급처방이다. 민주당과 노동계는 일단 예정대로 7월부터 비정규직법을 적용하되 문제가 있으면 그때 가서 보자는 입장이다. 한나라당은 현행 비정규직 시한 2년을 그대로 두되 시행 시기를 2년쯤 미루자는 의견이다. 국회는 이 같은 논란 속에 개정안을 상임위에 상정조차 하지 않았다. 비정규직 근로자들의 실직 위험이 눈앞에 닥쳤는데도 정치권은 6월 정기국회를 아직 열지 않고 있다.

정부의 개정안이 최선책은 아니다. 그러나 당장 비정규직법을 손질하지 않으면 대량실업이 불가피하다는 것 또한 현실이다. 정치권은 이 절박한 사정을 더 이상 외면하지 말기 바란다. 만일 법 개정 시기를 놓쳐 대량실업이 발생하면 무슨 수로 책임을 지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