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기점검 협상서 예상 못한 비판…IMF "금리인하 어렵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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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정부와 분기별 점검협상을 벌이고 있는 국제통화기금 (IMF) 이 정부의 금리인하 방침과 금융개혁 등에 대해 강도높은 비판을 하고 나섰다.

정부는 당초 금리인하나 재정적자 확대 등에 대해 IMF도 공감하고 있다고 판단, 협상이 순조로울 것으로 생각했으나 IMF측이 예상치 못한 문제를 계속 들고나오는 바람에 진땀을 빼고 있다.

재정경제부 관계자는 22일 "금리 인하나 금융기관 구조조정·외환보유고 사용문제 등에 대한 양측의 견해차가 큰 게 사실" 이라며 "정부는 불가피한 국내사정에 비중을 두고 있지만 IMF는 원칙을 더 강조하고 있다" 고 밝혔다.

게다가 정부내에서도 부처마다 의견이 엇갈려 창구역할을 맡고 있는 재경부를 곤혹스럽게 하고 있다.

◇ 금리인하와 환율 = 금리 추가인하 여부는 현재의 환율 움직임을 어떻게 평가하느냐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우선 재경부는 금융기관 단기외채의 만기연장과 외국환평형기금채권 40억달러의 성공적 발행 등으로 외환위기는 어느정도 수습됐다고 본다. 최근 환율이 달러당 1천3백원대에서 큰 폭의 등락없이 안정돼 있는 것이 단적인 예라는 것이다.

따라서 금리를 빠른 시일내 추가인하하더라도 외국자본이 대거 빠져나가는 등 외환시장 혼란은 없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더욱이 현재의 고금리 추세가 지속될 경우 기업 연쇄부도가 이어져 경제기반 자체가 파탄상태에 이를 것이며 이럴 경우 외채를 갚을 길이 없다는 점이 외국에 알려져 외환위기가 재발될 수 있다고 재경부는 IMF를 설득하고 있다.

하지만 IMF의 생각은 다르다. 우선 현재 환율이 '정상적으로 작동하는' 외환시장에서 결정된 게 아니라고 보고 있다.

국내 금융기관들이 여전히 자기 힘으로 외채를 갚을 수 없어 한국은행의 '신세' 를 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IMF가 최근 한은이 외환보유고에서 국내 금융기관에 지원해준 외채상환자금 잔액 1백46억달러를 조기에 회수하라고 요구하고 나선 것도 이 때문이다. 이 돈을 회수하고도 환율이 안정되면 그땐 환율안정을 인정하겠다는 태도다.

◇ 금융기관 구조조정 = IMF는 금융감독위원회가 추진하고 있는 금융기관 구조조정이 너무 더디고 구체적이지 못하다며 강한 불만을 표시하고 있다. 말만 있지 종금사 정리를 빼곤 눈에 띄는 진전이 없다는 것이다.

부실 금융기관에 대한 정리기준도 구체적이고 투명하게 제시하라고 IMF는 요구하고 있다. 금감위는 부실 금융기관에 대해 자구계획서를 받아 이행가능성을 평가한 뒤 정리방침은 나중에 정한다는 방침이다. 하지만 IMF는 객관적이고 구체적인 이행기준을 먼저 제시하고 이를 기한내 못맞추는 금융기관은 바로 퇴출시키는 강력한 구조조정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 외환보유고 운용 = 무역흑자를 늘리기 위해서는 수출기업에 대한 금융지원이 필요하며 이를 위해 외환보유고를 끌어다 쓰자는 국내 업계 및 정부 일각의 요청에 대해서도 IMF는 분명한 반대입장을 보이고 있다.

IMF는 "IMF의 긴급자금은 물론 세계은행·아시아개발은행 (ADB) 등의 구조조정자금은 우선적으로 외환보유고를 쌓는데 써야 하며 수출기업 지원 등에 쓰는 것은 최대한 피해야 한다" 는 것이다.

IMF는 한국의 외환위기가 적정 수준의 가용 외환보유고를 충족시키지 못했기 때문에 빚어진 만큼 외평채 매각대금은 물론 향후 경상수지 흑자분 등 한국이 벌어들일 수 있는 외화는 모두 당분간 가용 외환보유고 확충에 써야 한다고 권고했다. 한국은행도 IMF의 입장에 동조하고 있다. 외환위기에서 한고비 벗어난지 이제 얼마나 됐다고 또 헐어쓰기를 생각하느냐는 것이다.

홍승일·정경민·박장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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