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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해연안 '해저 사막화' 심각…악성조류 번성, 해초 사라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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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동해 연안이 심각한 '사막화' 위기에 처해 있다.바닷가 곳곳에 자라나던 싱싱한 해초들은 간 데 없고, 이 자리를 뿌연 악성조류 (藻類)가 기계독처럼 먹어든다.해초들과 어울려 자라는 전복.성게도 격감하고 있다.

강릉에서 포항, 2천리 동해 연안해역이 '풀없는 바위' 만 덩그러니 남는 '바다의 사막화' , 이른바 백화 (白化) 현상으로 신음하고 있다.당장 해산물의 피해도 막심하고, 해수의 자정능력 상실로 인한 오염 가중도 불 보듯 뻔한 상태다.

본지 취재진이 강릉에서 동해를 따라 남진하며 10곳을 현장탐사한 결과 백화로 인한 동해의 생태계.어획 손실은 복구하기 어려울 정도. 80년대 중반 제주도 남쪽 서귀포와 성산포.우도 등지에서 시작된 것이 이제 동해의 전 해역을 위협하고 있다.

강원도삼척시 덕산마을. 44년째 해녀생활을 하고 있는 홍일표 (洪一杓.67) 씨는 "지난해 봄부터 풀 (해초) 로 검푸르던 바닷속에 허연 석화 (石花)가 생기더니 이제는 아예 시멘트 바닥이야. 그러니 문어.해삼이 어디에 자리를 틀고 사누. 그 흔한 미역 구경하기도 힘든다요" 하며 고개를 저었다.

백화는 바닷속에만 그치는 게 아니다.악성 석회조류는 방파제와 해수면위 바위에까지 침범, 곰팡이 피듯 흉물스런 모습을 드러내놓고 있다.

남쪽으로 내려갈수록 백화의 기승은 더해간다.경북 영덕군 대부마을. 연안의 '흰' 바위들이 먼발치서도 뚜렷이 눈에 들어온다.96년 9백㎏에 이르던 이 마을 전복 생산량은 올해는 아예 전무. 30년간 해녀생활을 해오던 김분희 (56) 씨는 "생계조차 막연해져 아예 해녀 일을 그만두고 영덕시장에 새 일자리를 구했다" 고 말했다.

해양전문가들은 수온상승을 백화현상의 주범으로 지목한다.강릉대 김형근 (金亨根.수산자원개발학과) 교수팀은 "오래전부터 고리원전의 배수구 등 따뜻한 물이 유입되는 해역에서는 악성 석회조류의 과대 번식이 부산지역 바다보다 최고 10배에 이르렀다" 고 말한다.일본에서도 백화가 난류인 구로시오 해류의 이동경로를 따라 발생한다고 보고됐다.

또다른 원인은 질소.인 등의 결핍이 불러오는 빈 (貧) 영양화. 해초의 양식이 되는 이들 영양염이 조류의 변화 혹은 민물의 대량유입 등으로 인해 줄면서 해초들이 고사하고 대신 이런 환경에 강한 악성 조류가 번식한다는 것. 해수오염이나 불가사리.성게 등 이상번식도 원인으로 꼽힌다.

문제는 자생 해초와 함께 전복.성게 등이 사라지면 어류들도 더이상 발붙일 곳이 없게 된다는 것. 장기적으로는 해수의 자정능력 상실이 더욱 우려된다.일본 쓰쿠바대 시모타 임해실험센터 연구에 따르면 해초가 완전 고사할 경우 당해 해역의 자정능력이 40분의1 이하로 떨어진다는 것이다.

동해안 = 신용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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