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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칼럼] 사운드 오브 골프, 잘츠부르크 Gut Altentann GC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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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프스 산맥의 북쪽 경계에 자리잡고 있는 잘츠부르크는 오스트리아에서도 가장 사랑받는 관광지다. 모짜르트의 고향, 사운드 오브 뮤직의 배경, UNESCO 세계문화유산으로 유명하지만 도시의 풍광 자체만으로도 매력이 차고 넘친다. 잘자흐강과 알프스, 과거의 흔적들이 정갈하게 조화를 이루고 있다. 미라벨 정원, 모차르트 생가, 호헨짤츠부르크성, 레지덴츠 광장 등이 볼거리의 핵심이다. 하지만 우린 과거에도 이 도시를 충분히 돌아봤다는 어떤 '오만함' 때문에 맥이 풀려 있었다. 긴 여정 속에 체력도 고갈되었고 내리는 비 속에 하늘만 쳐다보며 무력해져 있었다.

개인적으로 잘츠부르크는 내 어머니를 연상시키는 곳이기도 했다. 사운드 오브 뮤직의 열혈팬이셨던 내 어머니, 당신의 세례명과 마리아 선생의 이름이 비슷해서인지, 처녀 시절 잠시 수녀원에 있었다는 동질감 때문인지, 노래를 즐기는 쾌활한 성격 때문이었는지… 당신이 내 곁을 떠난 후라 답을 들을 수는 없지만 어머니는 사운드 오브 뮤직의 마리아 선생과 당신을 상당 부분 동일시하셨다. 그래서 트랩 장군과 마찬가지로 일곱 자녀를 두셨고, 자식들의 음악적 소양을 개발시키기 위해 모두에게 피아노를 강요(?)하셨다. 물론 그 음악성 개발의 핵심에는 도레미송이 있었다. 음치였던 나의 선창으로 동생들의 합창을 이끄셨고, 뮤지컬 톤의 엄마 노래는 어린 자식들의 볼마저 붉게 만드셨다. 심지어 커튼을 뜯어 아이들의 옷을 해 입혔던 마리아 선생님과 똑같은 만행을 우리에게 저지르신 적도 있다. 그 시대엔 파격적인 퍼프 소매와 레이스 커튼지로 만든 흰색 원피스를 엄마부터 다섯 딸이 똑같이 해입고 성당을 향하던 모습은 동네 구경 거리 중의 하나였다.

때늦은 후회겠지만 만약 어머니와 함께 이 곳을 여행했다면 내 어머니는 발굴의 창의성을 발휘하여 딸에게 잊혀지지 않을 추억 몇 꼭지를 또 선사하셨을 것이다. 비에 젖어 더욱 선명해진 초록 언덕과 멀리 보이는 알프스가 사운드 오브 뮤직의 배경과 일치되면서, 추억이 아픔을 동반하여 기분이 다운 되었다.

이럴 때 우리를 다잡아주는 아이템은 역시 골프! 아침부터 내리고 있던 빗방울을 애써 무시하고 골프장을 찾았다. 잘츠부르크 시내에서 멀지 않은 Gut Altentann GC는 오스트리아 내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골프장이다. 알프스 산을 배경으로 지어진 통나무 클럽하우스는 전형적인 알프스 풍이었다. 나무 덧창 아래 장식된 화려한 꽃 화분과 내부의 장작 난로와 연결된 굴뚝이 인상적이었다.

1989년 오픈한 Gut Altentann 골프클럽은 알프스 자락에 위치하고 있어 다른 지역의 초록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 높은 채도의 초록 잔디를 자랑한다. 18홀 6,103m의 전장은 잭니클러스에 의해 설계되었다. 유럽 대륙에서 선보이는 첫 작품이었기에 더욱 심혈을 기울였다는 그는, 거리보다는 정확성, 근육보다는 두뇌를 쓰는 코스를 설계했다고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알프스의 아름다운 자연 경관을 훼손하지 않는 레이아웃에 역점을 두었다고는 한다. 두 개의 호수와 몇 개의 개울이 그대로 디자인으로 반영된 18홀 챔피언십 코스는 부드럽고 싱싱했다. 몇 몇 홀의 앵글은 사운드 오브 뮤직에 등장하는 장면을 연상시키기도 했다.

비가 오거나 말거나 Gut Altentann의 페어웨이는 따뜻하게 다가왔다. 대체로 오스트리아 쪽의 알프스는 웅장하고 빼어나기 보다는 친근하고 다정다감한 아름다움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니 잘츠부르크의 자연은 골프장 레이아웃으로는 천혜의 조건을 갖추고 있었다. 올려다 보이는 알프스는 험난했지만 발 딛고 있는 코스는 부드럽고 평탄했다. 알프스의 맑은 물을 담고 있는 호수엔 푸른 하늘과 알프스 산맥이 거꾸로 박혀 있고, 코스 주변의 능선을 타고 젖소들이 풀을 뜯는 목가적 분위기까지…. 유일한 단점이라면 알프스라는 기후적 한계로 5월에서 11월까지만 골프장이 운영된다는 점 뿐이다.

알프스 맑은 공기를 마시며 싱싱한 초록 위에 18홀을 마쳤다. 비를 맞긴 했지만 세포 속 노폐물마저 다 빠져나간 느낌이었다. 지친 몸도 오히려 가뿐해졌고, 기분도 한층 나아졌다. 통나무 클럽하우스, 한여름에 지핀 장작불 옆에 자리를 잡았다. 와인을 곁들인 식사로 체온과 세포를 보충하고 나니 이보다 더 행복할 순 없었다. 나무를 태우는 매캐한 연기가 비 맞은 우리 몸에 훈제 냄새를 입혔지만 세상 없이 행복했다.

“When the Lord closes a door, somewhere he opens a window.(하느님은 한 쪽 문을 닫을 때, 다른 창문을 열어 놓으신다)” 사운드 오브 뮤직 중 마리아의 명대사처럼 지친 우리에게 알프스는 새로운 창을 열어주었고, 에너지를 충전해 주었다.

이다겸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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