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강엽씨 '바보 이야기-그 웃음의 참뜻' 출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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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연세대 국문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현재 대학강사로 일하는 저자는 옛날 이야기부터 문학, 심지어 PC통신을 통해 인구에 회자하는 바보 이야기가 우리 사회에서 아주 오랫동안 생명력을 유지하고 있는데 주목해왔다.그래서 한국정신문화연구원에서 펴낸 '한국구비문학대계' 와 임석재의 '한국구전설화' 등을 참조해 한국의 바보 이야기를 총체적으로 정리했다.

그는 한국 설화문학 속의 바보 이야기를 ▶어리석은 바보▶양반 바보▶바보 사위▶바보 음담 (淫談) ▶바보의 행운으로 나눴다."가마가 왜 이리 무겁냐고 가마꾼들이 투덜거린다.그러자 안에 탄 색시가 '그래도 다듬이돌은 내가 들고 있어요' 라고 대꾸한다." 이런 '어리석은 바보 이야기' 는 적어도 이야기를 듣는 사람은 그런 일을 하지 않는다는 전제가 깔려 있다.

'바보 사위' 와 '바보 음담' 은 조혼이나 남녀 간의 자연스러운 교제를 막았던 유교사회에 대한 은근한 저항의 몸짓으로 풀이한다.아울러 바보 양반 이야기에는 바보 음담과 함께 사회적 금기에 도전하는 통렬한 면이 있다.

"셈을 못해 오리를 셀 때는 늘 두 마리씩 짝을 지워 맨 마지막에 짝이 맞는지만 살피는 바보주인이 있었다.어느날 짝이 맞지 않자 하인을 흠씬 두들겨 팼다.그러자 하인은 한 마리를 더 잡아 먹고 짝을 맞췄다.그러자 이 주인은 '녀석, 사다가 놓았군 그래. 이래서 매란 꼭 때려야 한다니까' 라며 박장대소했다."

이런 식으로 약자와 강자의 관계를 내세운 바보이야기는 신분제 사회의 배설구로 작용함은 물론 삶에 쾌감까지 더한다는 것이 저자의 분석이다.또 '온달과 평강공주' 처럼 '행운을 얻은 바보 이야기' 는 세상은 잘난 사람들의 독무대가 아님을 강조하고 열등인간으로서 바보가 빚어내는 우연한 결과를 보임으로써 삶의 태도에 대한 새로운 각성을 촉구하기도 한다.이렇게 바보에 대한 담론은 우리 문화 속을 도도히 내려오면서 인생에 대한 카타르시스를 제공한다.

한국의 바보 이야기의 특성은 우스개를 넘어 약자에 대한 동정과 강자에 대한 비판을 동시에 추구하면서도 바보를 지나치게 희화하지 않는다는 점이라고 저자는 밝힌다.이처럼 사회적 현실과 항상 맥이 닿아있던 바보 이야기는 고스란히 민족의 근대문학의 토양이 되었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 김유정의 '봄봄' , 계용묵의 '백치 아다다' 는 결코 남에게 해코지를 하지 않는 바보의 순진함을 강조한 작품이다.

채만식은 '치숙 (痴叔)' 에서 동경유학생 출신 무능력자를 등장시켜 바보양반의 맥을 잇고 있다.이문열의 '황제를 위하여' 는 바보를 양산하는 불행한 역사를 다각도로 그리고 있다.

저자는 자신을 "키 크고 싱겁지 않은 사람 없듯이 강의 중이나 일상 대화에서 농담을 꽤 즐기는 사람 "이라고 밝힌다.

채인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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