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일, 기독교 전파 이교도라 죽였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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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크에서 기독교를 전파하려는 이교도를 우리는 죽였다." 김선일씨를 살해한 '일신(一神)과 성전' 단체의 아랍어 홈페이지 1면에 떠 있는 글의 제목이다.

일신과 성전은 김씨 납치 및 살해 관련 비디오에서는 한국의 추가 파병을 저지하려는 정치적 목적을 언급했지만 인터넷 사이트에서는 기독교인이기 때문에 죽였다고 강조하고 있다.

◇이교도 김씨=미국의 한 인터넷 업체에 등재된 이 무장단체의 '공보팀' 홈페이지에는 김선일씨 살해를 정당화하는 짤막한 글이 올라 있다. "이 이교도(김선일씨)는 기독교 회사에서 일하고 있었다. 이 회사는 미군에 물자를 납품하는 회사인 동시에 수익의 10%를 이슬람 세계의 선교 및 기독교화에 사용하고 있다. 이 이교도는 신학을 전공한 자로서 이슬람 세계에서 선교활동을 할 후보자였다."

이 단체는 김선일씨를 '카피르'(이교도)로 규정했다. '신의 존재와 의미를 부정하는 자'라는 의미다. 과격 이슬람 사상에 따르면 무슬림(이슬람 신자)은 카피르를 죽일 권리와 의무가 있다.

알카에다의 핵심 요원 중 한명인 아부 무사브 알자르카위가 이끄는 이 단체의 홈페이지에는 아직도(14일 현재) 김선일씨 살해 장면을 담은 동영상이 올라와 있다.

◇종교가 살해 원인인가=김선일씨 피살 당시 촬영한 비디오에는 "한국 정부는 이라크인들을 도우려 온다는 거짓말을 그만해라. 저주받은 미군을 돕기 위해 이곳에 오는 것"이라는 내용밖에 없다. 김씨 살해가 추가 파병을 저지하기 위한 '정치적 목적'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그러나 김씨가 중동지역 선교를 원하는 기독교인이기 때문에 살해했을 정황도 충분하다. 우선 3주간 억류한 김씨에게서, 혹은 함께 억류됐던 이라크인 운전기사에게서 김씨의 신상에 대해 알아냈을 가능성이 크다.

6월 21일 살해 위협 비디오가 방영된 직후 김씨가 선교사를 꿈꾸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을 수도 있다.

홈페이지의 글에는 김씨가 살해당한 당일인 22일자 로이터 통신 보도의 번역이 일부 포함돼 있다.

외신들이 공개한 내용을 통해 '이교도' 김씨의 신상을 알게 된 탓에 추가적인 시한연장 없이 김씨를 바로 살해했을 수도 있다. 이 단체가 참수한 미국인 니컬러스 버그는 유대인이었고 김씨, 불가리아인 게오르기 라조프는 기독교인들이다.

◇중동선교 신중해야='일신과 성전'은 주로 이라크 전쟁 및 전후 점령기간에 미군에 의해 큰 피해를 본 수니파 이라크인들로 구성돼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이들의 이념에는 반서구, 반기독교 사상이 팽배해 있다. 언제라도 이슬람 세계에'침입하는'기독교 세력에 대한 공격을 지속할 것이라는 메시지가 홈페이지에 분명히 나타나고 있다.

현재 중동은 선교를 위해 나와 있는 한국의 기독교 단체 및 선교사들이 넘쳐나고 있다. BBC방송도 "한국의 중동지역 기독교 선교가 '지나치게 공격적'"이라고 지난 5월 지적한 바 있다. 지난 4월 9일 한국인 목사 9명이 납치된 것을 계기로 BBC는 "'열렬한' 한국의 기독교 단체들이 '적대적 환경과 위험'에도 불구하고 중동지역 선교를 '부주의하게' 추진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라크는 물론 중동 전체에서 더욱 신중하고 조심스러운 선교활동을 해야 할 때다.

카이로=서정민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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