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진국의 국난 대응]미·일 책임추궁보다 재발방지 주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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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대형 사건.사고가 발생했을 때 미국.일본 등 선진국들의 국민.지도층.언론은 단결했다.누구의 잘못이냐를 따지기에 앞서 사고의 원인규명과 재발방지에 국력을 모았다.

대표적인 것이 86년 1월28일 발생한 미 우주왕복선 챌린저호 공중폭발사건. 발사된지 75초만에 공중폭발, 전세계가 경악한 대형참사였다.그러나 엄청난 참사에도 불구하고 누구 하나 사고의 책임을 지고 구속되지 않았다.

한달 뒤인 2월16일 미항공우주국 (NASA) 의 필립 컬버트 일일업무 총괄국장만이 직위해제됐다.책임관계자 5~6명은 사고 원인규명에 참여, 원인을 밝혀낸 뒤 5월께 책임을 지고 스스로 NASA를 떠났다.

대신 "미국인들이여, 오늘의 불행을 전진을 위한 디딤돌로 여기자" 는 목소리가 드높았다.당시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은 "이 나라의 모든 국민들과 이 고통을 함께 한다" 며 단합을 역설했다.

언론들은 한술 더 떴다.뉴욕타임스는 사고 다음날인 29일자 사설에서 어느 누구를 비난하는 따위의 일은 삼가고 국민들의 깊은 좌절감을 용기와 희망으로 바꾸어 놓는 작업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언론은 1년여 사건을 집요하게 추적했다.그러나 책임자를 가리기 위한 것이 아니라 원인을 규명, 재발을 막자는 취지였다.96년 7월17일 2백30명의 승객.승무원 생명을 앗아간 TWA 800기 공중폭발 사고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미국정부는 책임추궁보다는 철저한 사고원인 규명에 총력을 기울였다.16개월에 걸친 조사에서 1천명의 수사관과 2백억원의 수사비를 투입, 시신으로부터 4만여개의 소지품을 수거하고 40평방마일의 바다를 뒤져 1백만여개의 항공기 조각들을 일일이 맞춰 원형의 96%를 복원했다.

사고조사를 위해 면담한 사람만도 7천명이나 됐다.당시 미사일에 의한 격추라는 음모설이 그럴듯하게 나돌았으나 철저한 조사 끝에 "이 사고는 범죄와 관련이 없다" 고 수사결과를 발표, 미 언론들로부터 "미 역사상 가장 깊이 있는 수사였다" 는 찬사를 받기도 했다.음모설로 인해 자칫 무고한 사람이 구속될지도 모를 위험을 철저한 원인규명으로 막아낸 것이다.

95년 1월 일본 고베 (神戶) 일대에 대규모 지진이 발생, 무려 5천여명의 사망자를 냈을 때도 일본은 특유의 단결력을 세계에 과시했다.특히 관동대지진에도 견딜 수 있게 설계돼 절대로 무너지지 않는다고 여겨진 이 일대 고속도로가 힘없이 무너졌지만 당시 일본 언론들은 사람에 대한 책임추궁 기사는 한줄도 보도하지 않았다.

대신 비난여론이 집중된 사항은 대지진이 발생한 날 무라야마 도미이치 (村山富市) 총리와 연락이 두절되고 초동대처가 늦었다는 등 총리관저의 정보수집 및 위기수습 능력이었다.그리고 비상대처 시스템 확립에 온 힘을 쏟았다.

정선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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