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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원 외환위기 특감 뒷얘기]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70일간 외환특감을 실시해온 감사원은 사안의 중대성.민감성 등을 의식해 보안에 신경을 곤두세웠다.재정경제부에 현장감사 나갈 때는 정보 노출을 막기 위해 특감반의 반장.과장.직원들끼리만 연락해 심야에 정부 과천청사를 기습, 서류 일체를 봉인해 버리는 '비밀작전' 까지 벌였다.

또 공정성.전문성 시비를 우려, 경제학 교수.변호사 등 외부 전문가를 동원해 자문했다.관련자들의 책임회피성 진술 등이 서로 엇갈리자 사실상 감사가 끝난 3월 중순 이후에도 보완조사를 계속했다.

○…가장 애를 먹은 것은 강경식 전경제부총리 조사 때라는 전언. 姜전부총리는 경제관료다운 정연한 논리와 특유의 '강경식 (强硬式)' 발언으로 감사관들을 당황케 했다는 것. 그는 조사과정에서 "책임이라면 정치적.행정적 책임밖에 없다" 며 "정치적 책임은 다음 국회의원 선거에서 지역구 구민들이 판단할 것이고, 행정적 책임은 현직에서 물러난 만큼 이미 진 것" 이라고 주장했다.

여기에 "사후 결과가 나빠졌다고 해서 그 전에 이뤄진 정책선택을 형사처벌의 대상으로 삼을 수는 없다" 는 논리도 전개했다고 한다.감사원 관계자들은 "기업도산에다 2백만명의 실직자가 나오는 상황에서 책임지겠다는 자세는 보이지 않고 오히려 정책판단이 징계나 수사의뢰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법 논리만 주장하고 있다" 며 황당해 했다.

○…당초 김인호 전청와대 경제수석에 대한 수사의뢰는 요구하지 않기로 한 감사원 방침은 홍재형 전경제부총리를 조사하면서 바뀌었다.청와대 경제수석은 대통령을 '보좌' 하는 역할일 뿐 정책집행의 의무나 책임은 없다는 게 원래 감사원의 판단이었다.

거기에 金전경제수석은 "지난해 11월7일 이전에도 당시 김영삼대통령에게 여러 차례 위기보고를 했다" 며 보고 묵살을 부인했던 것. 그러나 3월 중순 洪전부총리를 비밀리에 조사한 결과 지난해 11월14일 이전까지 환란보고가 전혀 없었다는 사실이 확인되면서 수사의뢰로 선회했다는 관계자의 설명이다.

○…감사원은 재경부에 대해선 여러 가지를 고려했다는 후문이다.외환특감이 옛 재경원 관료들의 정책을 사후 판단하는 최초의 정책감사였고, 비밀리에 불러 조사한 피감 (被監) 공무원들이 모두 재경부.한국은행의 전.현직 실세들이었기 때문. 더구나 감사원이 정부 예산의 과다편성.부실집행을 적발해내는 등의 '악연' 이 거듭된 관계이기 때문에 감사원의 고충은 남달랐다는 얘기다.옛 재경원 간부 대부분은 "정밀 복잡한 경제정책을 감사원의 일개 감사관들이 판단할 수 있겠는가" 라며 조사에 비협조적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감사원 특감반은 끈질기게 물고 늘어졌고, 한국은행에 대한 조사과정에서 한은의 위기 건의를 계속 묵살한 옛 재경원의 정책실패와 자만을 확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박준 (朴俊) 특감반장은 일문일답에서 "정치적 외압이나 비리혐의 등은 감사원의 권한 밖이라 적발치 못해 검찰수사를 의뢰한 것" 이라고 설명. 朴반장은 姜전부총리의 책임에 대해 "위기의 실상을 제때 보고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금융개혁법안에 대한 통과로 IMF모면을 위한 모습을 보였다" 면서 "IMF지원 요청에 대한 대통령의 재가를 받고도 인수.인계과정에서 불성실해 차질을 빚었다" 고 강한 톤으로 비판. 그는 姜전부총리와 金전수석을 고발치 않은 이유에 대해 "혐의는 충분하나 직무유기죄와 관련해 상이 (相異) 한 판례가 있어 검찰에서 법률적으로 충분히 검토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 이라고 언급. 朴반장은 종금사 인허가과정에서의 의혹에 대해선 "홍재형 당시 재경장관과 나웅배 (羅雄培) 전부총리가 결정한 사안으로 한분은 찾아가서, 다른 한분은 서면으로 조사했지만 특별한 의문점은 찾지 못했다" 고 답변. 종금사 전환과정의 문제점에 대해 朴반장은 "신경제 5개년계획에서 예정됐던 일정을 2년씩 앞당겨 94년과 96년 무더기로 허가한 행정적 문제점" 이라면서 "정치자금 조성의혹은 감사원의 영역이 아니며 나웅배.홍재형씨 등 당시 주무장관들은 실무자들이 요청해 이견을 내지 않았다고 진술했다" 고 소개.

○…감사원은 강경식 전부총리의 후임자인 임창열 전부총리에 대해서는 특별한 언급을 피했다.

박준 특감반장은 "姜전부총리는 IMF구제금융지원이 결정된 뒤 자신이 경질되자 인수인계를 제대로 하지 않아 林부총리가 'IMF구제금융신청은 없다' 고 발표, 혼선을 초래케 했다" 고 밝혔다.

김영삼 대통령과 姜전부총리가 기아사태 처리를 늦춰 대외신인도 하락을 초래하는 데 일조했다는 점을 지적하면서도 당시 주무부처장이던 임창열 통산장관은 언급하지 않았다.

채병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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