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 연평해전 가능성 어느때 보다 높아”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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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6호 06면

연제영 소령

“근무지 1지망은 동해바다였다”
연 소령은 10년 만에 연평바다로 다시 돌아왔다. 10년 전 자신이 목숨을 걸고 전투를 벌이던 바다, 후배 장교가 전사한 그 바다에 다시 돌아오고 싶었을까. 그것도 어느 해보다 긴장감이 커지고 있는 시점에.

연평 앞바다로 돌아온 연제영 소령

이유를 물으니 연 소령은 빙긋이 미소를 띠었다. “하늘의 뜻이라고 생각합니다. 지난해 인사철 때 본부에서 희망 근무 지역을 쓰라고 하더라고요. 1지망은 동해바다를 지키는 7함대를, 2지망은 연평·대청 해역인 2함대를 지원했습니다. 아마 인사 담당자가 전투경험이 있는 나를 다시 교전 가능성이 큰 2함대로 보낸 모양입니다.”

지금의 바다 사정이 어떠냐고 물었다. 그는 “사실 굉장히 위험한 상황이다. 제3의 연평해전 가능성이 어느 때보다 높은 시점이다. 하지만 10년 전 그랬듯이 지금도 담담한 심정이다. 수시로 후배 고속정장들에게 과거 얘기를 해주면서 교전이 발생하면 용감하게 잘 싸워줄 것을 부탁하고 있다”고 말했다.

말은 “담담하다”고 하는데 속내가 꼭 그렇진 않은 모양이다. 30대 후반의 많지 않은 나이인데도 귀밑머리에 하얀 새치가 잔뜩 올라와 있다. 원래 집안 내력에 새치가 있느냐고 물었더니 그렇지 않단다. 게다가 “지금 머리도 염색한 겁니다. 염색을 안 하면 반백이 됩니다. 한 4년 전부터 이랬어요”라고 말한다.

인터뷰 도중 수시로 북한 경비정과 중국 어선들의 움직임을 보고하는 전화가 울렸다.

“전장에선 적 움직임만 생각”
‘오늘이 노무현 전 대통령의 장례식인데 알고 있었나. 전 국민이 온종일 슬픔에 빠졌는데 심정이 어떠냐’고 물었다. 그는 “전장(戰場)에서는 정치적 가치판단을 할 여유가 없습니다. 가장 먼저 생각하는 게 ‘오늘은 정말 적들이 우리를 노릴 수 있겠다’는 겁니다”고 답했다.

사실 해군 2함대는 노 전 대통령 시절에 대한 기억이 그리 곱지 않다. 연평해전에서 전사한 장병의 유가족과 주변 사람들은 특히 그렇다. 당시 남북 정상회담과 개성공단, 금강산 관광으로 남북관계가 해빙무드에 들어간 때라, 그 한가운데 벌어졌던 연평해전은 ‘찬밥신세’였다. 한국전쟁 이후 첫 양측 정규군 간의 해전이었던 제1, 2차 연평해전에서 모두 우리 해군이 승리를 거뒀지만 전사자 추모식조차 제대로 할 수 없었다. 행사도 해군본부가 아닌 2함대 차원에서만 할 수 있었다. 지난해가 돼서야 비로소 정부 차원에서 추모식을 주관했다. 당시 전투의 이름도 기존 ‘서해교전’에서 ‘연평해전’으로 바뀌었다.

‘교전’이 비정규군과도 벌일 수 있는 우발적 소규모 전투라면, ‘해전’은 정규군 간 벌이는 진짜 전쟁을 의미한다. 교전수칙도 기존 5단계(경고 방송-시위 기동-차단 기동-경고 사격-조준 격파)에서 3단계(시위 기동-경고 사격-조준 격파)로 강화됐다. 해군은 당시 적이 먼저 공격을 해오기 전에 먼저 공격할 수 없는 기존 교전수칙 때문에 아군 측 피해가 불가피했다고 호소했다. 1차 연평해전에서 ‘9명 부상’, 2차 연평해전에서 ‘6명 전사, 18명 부상’의 피해를 본 것이 그런 이유에서라는 거다.
연 소령은 “교전규칙이 바람직하게 교정됐다고 생각한다”며 조심스레 의견을 밝혔다.

“단속 성토하는 어민들에 섭섭”
북한군과 싸우기에도 벅찬 연평바다의 해군은 3중고에 시달리고 있다. 주임무는 당연히 NLL을 사수하는 것이지만 북한 경비정 외에 중국 어선도 몰아내야 한다. 우리 어민들이 조업권을 벗어나지 않도록 통제해야 하는 것도 힘든 일이다. 매일 오전 5~6시 꽃게잡이 배가 출어할 때면 어김없이 해군 2함대 고속정 2대가 같이 나가야 한다.

해군에 대한 어민들의 인식도 부담스럽다. 조업권을 벗어나는 어선들과 이를 막아야 하는 해군이 수시로 갈등을 겪을 수밖에 없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어민 입장에서는 조업권 밖에 더 많이 널려 있는 꽃게를 그냥 두기가 어렵다. 어민들은 “우리 바다를 싹쓸이해 가는 중국 어선은 못 잡고 만날 우리 어민들만 단속해 댄다”며 해군과 해경을 성토한다.

연 소령은 “연평도에 가면 해군한테는 회도 안 판다는 얘기를 듣고 너무 섭섭했다”며 “적을 코앞에 두고 숨막히는 긴장감 속에서 생활하는 우리 장병의 고충을 알아줬으면 좋겠다”고 토로했다.



연평해전 1999년 6월 15일 NLL을 넘어온 북한 해군의 공격으로 시작된 1차 해전에서 우리 해군은 9명이 부상을 입고, 2척의 정찰선이 파손되는 피해를 보았다. 북한은 30명 사망에 70명이 부상을 입고 2척 침몰, 5척이 파손되는 타격을 입고 물러났다. 2002년 6월 29일 벌어진 2차 해전에서는 우리 측 참수리급 고속정 357호가 침몰하고 6명 전사, 18명이 부상을 입는 피해를 보았다. 북한은 등산곶 684호가 반파되고 30명이 사상당하며 퇴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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