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신문의 날]변혁 이끄는 중앙일보…한국신문 새지평 열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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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숨가쁜, 그리고 외로웠던 결단의 나날들 - 94년 3월26일 독자들에게 제2의 창간을 고 (告) 했다.별거 있겠어. 한번씩 해보는 소리지. 15명의 전문기자 선발 (6월9일) .전문기자라, 뭐지. 3섹션체제의 첫선을 보였다 (9월1일) . '섹션신문 중앙일보' .이미 겉멋 차리기는 아니었다는 사실. 인터넷 전자신문의 시범서비스에 들어감으로써 (95년 3월2일) 네티즌들과 '접속' 의 막을 올렸다.그리고 무척이나 망설였던 조간 전환 (4월15일) .살얼음판을 걷는 기분이었다.

다시 결단 하나, 전면 가로쓰기를 단행했다 (10월9일) .그저 안개 속일 것 같았던 정상 (頂上) 이 모습을 드러냈다.진통 (陣痛) 은 길지 않다.잠시 열병을 앓을 뿐 - 알을 깨는 아픔이 비단 소년 데미안에게만 닥치는 걸까. 오늘 중앙일보도 아프다.

또다른 알을 깨고자 함이다.새 언론의 지향점을 향해 가는 길에 삐죽삐죽 고개를 내민 돌부리들. 어느날 우리의 결단이 이미 장강 (長江) 을 이루고 있음을 보았다.한국 언론계를 휩싸고 흐르는 신문 변혁의 주류 (主流) 였다.그래, 우리는 잠시 뜨거워 있어도 좋다.

여기서 또 멈춰서지는 않는다 - '종이없는 사회' 란 예측은 빗나가고 있다. '기술적 허세 (technological bluff:프랑스 사회학자 엘뤼의 표현)' 를 말하면서 새로운 미디어에 대한 전망을 부정하려는 게 아니다.구텐베르크적인 납의 뜨거움은 결코 식지 않는다.

지식에의 열정 혹은 진정성 같은 것. 여기에 우리는 전자통로의 자유로움과 냉정함을 보태고자 한다.어차피 전자적 기술의 뒷받침 없이는 개인화된 '맞춤신문 (personal journal)' 은 불가능한 일. 우리는 독자에게 좀더 가까이 다가가는 신문을 위해 정보통합자의 길로 나아가고 있다.

허의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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