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대통령의 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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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미국 대통령의 사생활이나 백악관의 안살림에 대해 글을 쓰려는 사람들은 반드시 백악관의 하급직원들을 만나 취재하는 게 정석처럼 돼 있다경호원이나 승용차 운전기사 혹은 전용비행기 조종사 같은 사람들이다.눈치보지 않고 거리낌없이 모든 것을 털어놓기 때문에 이들을 통해 대통령 일가의 일거수일투족이 낱낱이 공개되곤 한다.

대통령의가족에 대한 이들의 증언은 대개가 비판적이다.일부러 헐뜯으려는 게 아니라 대통령도 아니면서 사사건건 군림하려는 가족들의 자세가 역겨웠는지도 모른다.특히 역대 대통령의 자제들은 거의가 '버릇없고 거만한' 공통점을 보였다고 입을 모은다.

그 전형적인 본보기가 닉슨의 딸 트리샤였다는 데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없다. 전용기의 의자에서 이상한 냄새가 난다며 각료회의를 주재중이던 아버지를 밖으로 불러내 따졌던 일, 자동차나 비행기를 기다리게 해놓고 몇시간이나 늦었으면서도 사과 한마디 없이 올라탔던 일 따위가 모두 당시 경호원들에 의해 훗날 밝혀졌다.

존슨의 세 딸들이 경호원들을 종처럼 부리는가 하면 외출중 여러차례 거추장스러운 경호원들을 의도적으로 따돌려 골탕먹인 일도 유명하다.

'대통령의 딸' 일 뿐인데도 그들은 마치 자기네들이 대통령인 양 온갖 '특권' 을 누리려 했다는 것이다.그래서 '아드님보다 따님 모시기가 백배 천배 힘든다' 는 것도 예나 이제나 백악관 경호원들의 공통된 푸념이다.

가정교육이나부모의 역할이 자식들의 성격형성과 장래 진로 (進路)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친다면 '버릇없고 거만한' 자세 역시 결국은 그들의 아버지인 대통령의 탓이다.

어렵사리 오른 대통령의 자리인데 가족이라 해서 그 후광 (後光) 의 덕을 보지 말란 법은 없으니 문제는 그들이 어떻게 아버지의 좋은 점을 취하고 나쁜 점을 버리느냐는 데 달려 있는 셈이다.

엊그제 보궐선거에서 당선한 고 (故) 박정희 (朴正熙) 전대통령의 딸 근혜 (槿惠) 씨는 세상을 떠난 어머니를 대신해 5년 남짓 퍼스트 레이디의 역할을 감당했다는 점에서 인도의 고 인디라 간디 전총리와 유사한 일면이 있다.

20년 가까운 공백이 있었지만 정치의 일선에 나섰다는 점도 그렇다.

현역 대통령의 딸이었던 시절 국민들의 자신에 대한 시선이 어땠는지를 되새겨보는 것도 앞으로의 정치활동에 도움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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