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리랑카서 온 근로자들 보듬고…1000년 사찰 월봉사에 한글교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0면

“꼬~마. 꼬마는 Kid. 어린이라는 뜻입니다. 따라 해봐요.”

“@#*??….”

“꼬~마. 꼬~마.…”

월봉사가 스리랑카 출신 이주 노동자를 위해 문을 연 한글교실에서 24일 열띤 강의가 진행되고 있다. [울산 동구청 제공]


선생님이 한국어·영어를 섞어가며 가르치면, 통역이 스리랑카어로 전달하고, 그제야 의미를 깨친 스리랑카인 근로자들이 큰 소리로 복창을 하며 따라 쓰기를 하고 있다.

24일 오후 8시쯤 울산 동구 화정동 산기슭에 있는 1000년 고찰 월봉사의 한 방안에서 난데 없이 ‘가나다라’를 익히는 소리가 낭랑하게 흘러 나왔다.

스리랑카에서 온 이주 근로자들을 위해 오심 주지스님(42)이 개설한 ‘한글 교실’. 매주 일요일 오후 7시~8시30분 인원이 40명을 넘을 때는 법당, 좀 적을 때는 신도들의 식당으로 쓰는 큰방을 강의실로 쓴다.

10일부터 시작해서 이날이 세번째 강의다. 강사진은 오심 스님과 인근에 사는 신도, 월봉사가 운영하는 울산광역시립요양원의 교사 등 8명의 자원봉사자로 구성됐고 이 가운데 2~3명씩 매주 돌아가며 강의를 한다.

교재는 울산 동구청에서 제공한 ‘이주 여성을 위한 한글 교본’을 편집·제본해서 쓰고 있다. 하지만 스리랑카어로 된 원본이 없는데다 강사들이 스리랑카어를 몰라서 중간에 통역을 넣어서 강의를 하고 있다. 통역은 역시 스리랑카에서 온 근로자지만 동료들보다 한국에 익숙한 마힌다(34)씨가 맡고 있다. 그는 한국에 온지 4년이 넘었다. 한국어로 쓰기는 아직 서툴지만 듣고 말하기는 능통하다고 한다.

오심 스님이 한글교실을 연 것은 불교국인 스리랑카에서 온 근로자들이 주말이면 월봉사로 찾아와 향수를 달래곤 했던 게 인연이었다. 절 인근에는 현대미포조선의 협력업체들이 운영하는 근로자용 합숙소가 있다.

월봉사는 올해초부터 스리랑카 근로자들의 방문이 잦아지자 4월말 이들을 위해 사찰안에 17㎡정도 크기의 방을 마련, 이들이 필요할 때 쉬었다 갈 수 있도록 배려하기도 했다. 이들을 좀 더 도와줄 방법을 찾다가 이달초부터 한글교실을 열게 된 것이다.

스리랑카인 근로자 대표격인 마힌다씨는 “모르던 것을 하나하나 깨쳐가면서 외국이란데서 오는 두려움이 많이 줄었다. 공부가 끝나면 스님이 피자파티를 열어주고 과일·떡 같은 간식도 준다. 한글교실이 시작된 이래로 모두가 주말을 손꼽아 기다리게 됐다”고 말했다.

월봉사의 홍성표 사무국장은 “스님이 이들에게 ‘우리도 어려웠던 때가 있었다. 남같지 않다’고 격려해주고 있어 수업분위기도 상당히 진지하다”며 “이들에게 한국을 바로 알리고 양국의 우호를 돈독히 하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기원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