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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땅의 국수를 찾아서 ④ 진주냉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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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냉면 황덕이 할머니(80)가 사위 정운서씨(50)를 최고라며 자랑하고 있다. [조용철 기자]

진주는 평양과 함께 조선시대 교방문화의 양대 꽃이었다. 이 두 도시의 대표음식이 ‘냉면’인 것도 비슷하다. 당시 한양서 내려온 한량들이 유곽의 기생들과 어울려 입가심으로 먹었던 대표적인 음식이 ‘진주냉면’이다. 60여 년 전부터 진주의 나무전거리(현 중앙시장)에서 냉면을 냈다는 황덕이(80) 할머니는 “서울 돈쟁이들이 냉면 먹으러 차를 몰고 진주까지 왔다”고 기억을 더듬었다.

진주냉면이 어떻게 시작됐는지는 정확하지 않다. 다만 구한말 관아에서 일하던 숙수들이 저잣거리로 나와 지금의 중앙시장에 가게를 내면서 대중화됐다는 게 정설이다. 이후 한국전쟁 무렵까지 나무전거리 냉면집은 수정냉면·은하냉면·평화냉면·부산식육식당 등 6~7곳이나 됐다. 외식 장소로 고급 요정이나 장터국밥 정도였던 시절 이곳엔 ‘냉면 골목’을 이뤘을 정도였다.

진주냉면은 해물 육수가 특징이다. 진주·남해·사천에서 잡힌 죽방 멸치에다 대합·홍합 등 해산물을 달인 물과 조선간장으로 육수를 냈다. 멸치의 비린내를 없애기 위해 집집마다 독특한 노하우가 등장했는데, 뜨겁게 달군 무쇠를 끓는 멸치장국에 넣어 순간적으로 온도를 올려 비린내를 없애기도 한다. 여기에 산·바다·들에서 나는 진미를 꾸미로 올렸다. 전복·문어를 비롯해 석이버섯·쇠고기 육전 등이다. 면은 메밀가루를 빻아 밀가루나 전분을 섞어 만들었다. 애초 교방청에서 시작된 별식이었으므로, 진주 인근에서 나는 귀한 재료는 죄다 갖다 썼던 셈이다. 그러니 돈 많은 왜인이나 서울에서 유람 온 한량들, 부잣집 마님 같은 특권층이 아니면 사 먹을 수 없는 별식이 된 것이다.

그러나 1966년 진주 중앙시장 화재 이후 밀집했던 냉면집들은 서부시장 등으로 흩어진다. 그러다 70~80년대, 외식 메뉴가 다양해지면서 별미는 점차 잊혀져 간다. 조리 과정이 복잡하고 시간이 많이 걸리는 데 비해 상대적으로 가격은 싸다는 게 퇴조의 이유였다.

현재 진주에서 대를 이어 냉면을 내는 곳은 서부시장 골목에 있는 ‘진주냉면’이 유일하다. 예전 황덕이 할머니가 하던 ‘부산식육식당’이 ‘부산냉면’을 거쳐 4년 전 현재의 간판으로 바뀌었다. 또 황덕이씨의 아들·딸 5남매가 진주·사천·부산 등에서 총 7군데의 ‘진주냉면’을 운영하고 있다. 서부시장 본점은 황 할머니의 막내 사위 정운서(50)씨가 맡아 20여 년 전부터 운영하고 있다.

육수 비법은 비밀이라고 했다. 하지만 육수 조리실을 보여 줬다. 이곳엔 솥의 지름이 약 1.5m나 되는 깊은 알루미늄 솥이 있다. 1800L 들이라고 했다. 이 솥에 물과 해물·채소·과일 등 수백㎏을 넣고 3일간 달여 내면 물엿처럼 걸쭉한 육수 원액 약 1000L가 만들어진다고 한다. 이를 18L들이 통에 담아 보름 정도 냉장고에 두면 자연스럽게 숙성된다. 그동안 멸치 찌꺼기 등이 통 위로 떠오르는데, 이것을 제거해야 비린내가 덜하다고 한다. 이 원액에 생수를 1:8 비율로 희석하면 냉면 육수가 된다. 서울 사람 입맛에는 짠 듯하지만, 얇게 썬 배추·오이·배 등이 고명으로 올라와 있어 짠맛을 덜어 준다. 쇠고기 육전을 제외한 전복·석이버섯 등이 고명에서 사라져 소박해졌다.

진주냉면의 내력이 알려지고, 다시 인기를 얻게 된 것은 최근 일이다. 정운서씨는 “10여 년 전만 해도 우리 집이 진주냉면의 맥을 잇고 있는지도 몰랐다”고 말했다. “장인어른이 하던 대로 했는데 나중에 대학교수나 음식연구가들이 와서 이게 진주냉면이라고 알려 줬다”는 것이다. 어쨌거나 이 냉면집은 요즘 진주시를 대표하는 프랜차이즈가 됐다.

황덕이 할머니의 냉면은 반세기 전엔 진주의 냉면집 중 후발 주자였다. 그런데 지금은 이곳만 살아남은 것이다. 정씨는 장수 비결로 “다른 집들은 냉면만 팔았지만 식육점을 했던 이곳은 고기를 함께 팔았다는 점도 큰 이유”라고 꼽았다. 서울의 유명 냉면집들이 ‘불고기·냉면 쌍두 체제’로 가는 것과 비슷하다.

정씨는 “서울에 분점을 낼 생각이 없다”고 한다. 일종의 신비주의 전략이다. 진주에 와야만 먹을 수 있는 음식으로 남겠다는 것이다. 여름이 되면 열흘에 한 번씩 육수를 낸다는 정씨는 “육수 내는 게 너무 힘들다”며 “혹시 나 죽으면 마누라 보고 하라고 만드는 법을 정리해 금고 속에 넣어 두었다”고 했다.

김영주 기자 , 사진=조용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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