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경제위기는 마음 황폐해져 온게야" 성전암의 철웅선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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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4면

대구 팔공산 파계사 성전암 (聖殿庵) 의 철웅 (哲雄) 선사 (65) 를 만났다.

20년 동안 산문 밖을 나가지 않고 수행 정진해 온 철웅화상은 오늘의 한국 선림 (禪林) 을 대표하는 선지식 (善知識) 중의 한 사람이다.

성전암은 서울 도봉산 천축사 무문관과 함께 선승들의 수행처로 유명한 곳. 성철 (性徹) 전 조계종 종정도 여기서 8년 장좌불와 (長坐不臥) 를 해 법력을 높였다.

성전암을 오르는 8백여m 언덕 오솔길의 청산녹수 (靑山綠水) 는 장관이다.

청산은 붓을 들어 칠하지 않았어도 천추에 빼어난 그림이요, 계곡의 푸른 물은 줄이 없어도 만고에 변함없는 거문고라고나 할까 (靑山不墨 千秋畵 綠水無弦 萬古琴) .

- 처음 뵙겠습니다. 그래 20년 동안 성전암 토굴생활이 어떠했습니까.

"배 고프면 밥 먹고, 졸리면 잠 자고, 더우면 부채질하고, 추우면 난로불 쪼였소. 결국은 신도들한테 절 받아 먹고 돈 받아 쓰며 산 게지. " - 돈 받고 절 받느라 한가하진 않으셨겠군요. 31일 그 동안의 수행 정진을 회향 (廻向.자신의 공덕을 중생에 돌림) 하신다는데 회향 후는 어디로 가실 겁니까. "신도들 피땀 걷어 먹고 살았으니 신도 집의 황소가 돼 논밭 갈고 우마차를 끌어야지. 그런데 성전암에 한 10년 더 있고 싶기도 하고…. 마음자리가 이 지경이니 공부를 제대로 했는지…. "

- 배 고프면 밥 먹고, 졸리면 잠 잤으면 평상심 (平常心) 의 경지가 아닙니까.

"글쎄, 그 평상심이 바로 도 (道) 인데 말이야. 고저.장단.범성 (凡聖.범부와 성자).유무 (有無) 를 구분하는 일체의 분별심을 떠난 마음자리가 평상심인데 과연 내 심지 (心地)가 그에 부합하는지. 어쨌든 20년의 일상생활을 산 내 마음이 항상 똑같았고 어떤 변화도 없었던 건 확실하오. "

- '열반경' 과 역대 조사들은 '일체 중생이 모두 불성 (Buddha Consciousness) 을 가지고 있다 (一切衆生悉有佛性)' 고 누누이 강조해 왔는데 어떤 것이 불성입니까.

"불성이란 모든 존재의 근원인 '그 무엇' 이라고나 할까. 두두물물 (頭頭物物.현상계의 삼라만상) 의 색계 (色界) 를 있게 하는 본체가 바로 불성인데 그 본질은 공 (空) 이지요. 분별심을 일으키지 않은 본래의 청정한 자성 (自性) 으로서의 마음이 바로 불성이오. 그저 사량계교 (思量計較.생각하고 헤아려 비교함) 하는 분별심만 버리고 마음을 비워 본체계와 현상계를 아우르는 체용일여 (體用一如)가 되면 그게 바로 중생불 (衆生佛) 인 거요. "

- 들고 있는 화두는 뭡니까.

"내가 일생 동안 들고 있는 화두는 '이 뭐꼬 (是什磨 : What is this?)' 요. 나라는 존재는 무엇인가, 부처가 되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이 놈은 대체 누구인가 하는 의문을 품어왔소. 부처란 대상이 외부에 존재하는게 아니라 바로 '나' 라고 생각돼. 그래서 한 10년 더 내면자증 (內面自證.자신에 대한 성찰) 을 해야겠다는 생각이지. "

철웅화상은 한마디로 화통 (化通) 한 선승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처음부터 아예 말을 놔버리면서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촌사불괘 (寸絲不掛) 의 알몸인 확 열린 가풍 (家風) 이다.

영어도 유창하다. 출가 전 부산서 미 (美) 제7항만사령부 통역을 한 전력이 있다지만 승려생활 (僧臘) 40년인데도 발음이 전혀 흐트러지지 않았다.

철웅선사는 원래 경남양산의 용연 출생으로 경남고를 나와 연세대 부산분교 철학과에 입학했다가 집안의 사업실패로 중퇴하고 취직을 했었다고 한다.

그는 도산 안창호 선생을 흠모하는 정치 지망생이었고 흥사단에도 관계했다.

1957년 어느날 해인사에 들렀다가 춘원 이광수의 사촌형이기도 한 운허스님을 만나 불가귀의를 발심, 출가했고 대구 동화에서 설석우스님을 은사로 사미계를 수계했다.

그 후 40년 동안 통도사 극락암 선방.성전암 등 선림에만 묻혀 만암 (1876 - 1956) - 서옹 (백양사 방장) 법맥을 이으며 정진해왔다.

현재 전강 법맥의 송담, 향곡 법맥의 진제선사와 함께 손꼽히는 한국선종 (조계종) 의 선지식이다.

지금까지 그는 주지 자리같은 사찰소임이나 종단감투를 한번도 써본 적이 없다.

- 요즘 IMF다, 경제위기다 해서 야단입니다.

"부의 원리는 원래 하늘 (道)에 있는 것이오. 따라서 경제위기란 없는 거요. 정신적 위기가 문제일 뿐이지. 오늘의 경제위기는 국민정신의 타락과 개개인의 마음이 황폐화한 데서 온 거요. 마음의 황폐화야 말로 영원한 위기요. 이 위기는 에고이즘을 버리는 의식개혁 없인 못 극복해요. 나는 오늘의 모든 위기의 근원이 정신적인데서 비롯됐다고 보오. 그렇다면 차라리 위기는 잘 온 거요. 극복방법은 지도자가 검소하고 부지런히 사는 풍토를 조성하고 국민을 이끌면 돼요. "

- 옳은 얘긴데 교육이 뒷받침돼야겠지요.

"교육은 이제부터라도 사람 되는 덕 (德) 을 쌓도록 하는데 초점이 모아져야 합니다. 구체적으론 인격교육운동과 근면정신 함양을 우선해야 돼요. 단어나 달달 외우게 하는 건 앵무새교육이지. "

- 지난 대선 때도 후보들이 찾아 왔고 평소에도 거물 정치인과 저명인사들이 많아 찾아 온다는데.

"많이 왔지. 그런데 보니까 대통령감이 안되는데 대통령 하겠다는 욕심만 얼굴에 덕지덕지한 사람도 있더군. 지도자의 첫째 조건은 돈을 몰라야 하는 거요. 진정한 지도력은 자신의 마음을 비울 때만 생겨나지. 그런데 마음이 물욕.권력욕.명예욕으로 꽉 차 있으니 되겠어. 내 면박도 좀 주기는 했지만 사람이 되는 덕 (德) 도 제대로 갖추지 못하고 거들먹거리는 사람 많더군. "

- 경제인들도 많이 찾아옵니까.

"정치인보다 더 많아요. 대구 갑부가 빚 2억 얻는데 보증 서 달라기에 해주었다가 못 갚는 바람에 물어주느라 혼줄이 난 일도 있소. 분별심으로 하는 경영은 반드시 실패해요. 자타일체 (自他一體) 의 입장에서 부 (富) 란 하늘의 도 (道) 를 나누어주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꼭 성공하지. 보시오, 부처와 예수가 경영의 최고 성공자 아닙니까. 몇 천년동안 수많은 중과 신부.목사들을 잘 먹여 살리고 있지 않소. 미국의 포드나 일본의 마쓰시다가 보여준 경영의 재능도 이런 하늘의 도를 믿고 (We trust in God) 실천한 거요.

미국 지폐에 들어 있는 위조 방지의 금선은 바로 불가가 말하는 법안 (法眼) 이오. "

- TV나 신문을 보시는지요.

"TV뉴스는 열심히 보지. 중도 사람이고 이 세속 안에 사니까 세상 돌아가는 물정을 오불관 할 순 없지 않소. 총리 인준문제로 꽤 시끄럽던데 우중정치 (愚衆政治) 하자는 거 같아 답답하더군. 대선 공약으로 이미 지명된 총리고 국회에 앞서는 국민의 심판을 받았는데 무슨 수작인지 원…. "

- 선무 (禪武) 와 풍수.관상에도 일가를 이루었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건강관리와 분별심을 떨어내기 위해 운동을 좀 하는 것뿐이오. 관상이니 풍수라는게 어디 있소. 그저 오랫동안 참선을 하다 보니 직관력 (直觀力) 이 생겨 사람들 얼굴만 봐도 나름의 느낌이 와요. 옛날부터 신언서판 (身言書判) 이란게 있지 않았소.

요사이 중들 관상 봐주고 점친다는 얘기가 들리던데 그거 아주 몹쓸 짓 하는 거요. 선지식은 자꾸만 없어지고 공부는 안 하는 근래의 승가 (僧伽) 시절인연 (時節因緣) 이야말로 크게 걱정될 뿐만 아니라 자괴감을 거듭 느끼게 하는데…. "

(이 대목에서는 목이 메이면서 자신있던 어투가 스러져 버렸다.)

- 흔히 깨침에 이르는 길이 두 가지가 있다고 하는데 한번 홀연히 깨치는 것으로 모든 것이 완성되는 돈오돈수 (頓悟頓修) 와 진리를 깨친 후에도 계속 수행하는 돈오점수 (頓悟漸修) 어느 쪽을 지지하시는지요.

"깨침의 계기가 되는 시절 인연이 무르익어 견성 (見性) 을 이루는 데는 전광석화 같은 돈오라야 되지. 그러나 견성 후의 이른바 오후보임 (悟后保任.깨침후 계속 수행) 은 꼭 필요해요. 돈오 후의 점수는 속진 (俗塵)에 대한 자기 방어라 할 수 있지. 따라서 성철 전종정이 보조지눌의 돈오점수를 정법이 아니라 비판한 건 잘못된 거였지요. "

날도 어두워지고 해서 대담을 끝내고 일어섰더니 철웅선사는 한사코 저녁 공양을 하자며 주저 앉힌다.

청량법음 (淸凉法音)에 절밥까지 얻어 먹고 내려오니 매우 기분 좋은 하루였다.

이은윤 〈종교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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