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이재선 홍익대교수…전분야 '시장화'만이 살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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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대량실업이 엄습하고 있다. 도대체 한국경제가 당면하고 있는 위기의 끝은 어디인가.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것은 떠났던 외국인 투자가들이 다시 돌아오는 날일 것이며 한국기업이 국제시장에서 요구하는 투자수익률을 내는 날이고 우리가 지금까지 해오던 거의 모든 것을 정반대로 하는 날이다.

국부적인 금융제도개혁이나 기업의 구조조정에서 끝날 일이 아니다. 정치.경제.사회.교육제도 모두가 시장경제체제화 되는 날이다. 더이상 '이론과 현실은 다르나' 느니 '여기는 한국이라' 느니 '너무 교과서적이라' 느니 하는 말들이 정책입안자나 특히 학자와 전문가들 사이에서 없어지는 날이다. 이것은 IMF가 현재 우리에게 요구하고 있는 것을 훨씬 뛰어넘는다.

그러나 문제는 우리 스스로를 확신시키지 못하고 있다는데 있다. 우선 아직도 우리경제의 기본은 문제가 없는데 정부.기업.금융기관의 투명성이 없어 국제투자가들의 신뢰를 잃은데 원인이 있다고 보는 사람이 많다는 점이다. 경제성장률, 물가상승률, 무역규모등을 갖고 기초가 튼튼하다고 보는 모양인데 이들 지표들을 보고 투자한다는 얘기는 경제학 교과서에도 없다.

개별투자가의 입장에서 이들 지표는 해당투자의 수익성 검토시 한 자료가 됨은 사실이나 투자자들은 그들이 요구하는 최적수익률이 보장될 때에만 투자를 하는 것이고 그 최저수익률은 국제시장에서 받을 수 있는 최고의 수익률이 되는 것이다. 만약 국제시장에서 10%를 받을 수 있다면 동종의 위험을 부담해야 하는 사업에서 우리나라에서 최저 10%가 보장되어야만 우리나라에 들어올 것이다. 제발 투명성만 보장되면 외국인이 한국에 다시 투자할 것이라는 환상을 버려 주길 바란다. 우리기업들은 외부 차입 의존으로 높은 매출.외형 성장을 해왔고 그로인해 국민경제도 연간 7~8%의 고도성장을 해 온 것이다.

자기자본에 대한 비용도 충분히 보상해 주지 못하는 기업에 누가 투자할 것이며 그런 기업의 사채를 누가 살 것인가. 현상황에서는 투명성이 보장되면 오히려 몇몇 남아있던 외국인 투자가들마저 보따리를 쌀까 걱정된다.

낮은 경쟁력은 과잉투자에 있는 것이지 과잉차입에 있는 것이 아니다.

이것이 바로 IMF가 이자율을 높게 유지하고자 하는 이유다. 그리하여 기업들이 과잉투자를 제거하여 투자의 생산성을 높임으로써 최소한의 자기자본 비용이라도 회수할 수 있어야만 외국인 투자가들이 투자하려 할 것이다. 60년대 개발전략이 성공적이었다면 이제 우리는 그 대가를 지불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보면 수치스러울 것도 한탄스러울 것도 없다. 때늦은 것도 없고 그저 올 것이 왔다고 보면 되는 것이다. 우리의 개방속도가 너무 빨랐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지만 개방은 생존을 위해 피할 수 없었지 않았던가. 책임과 관련하여, 만약에 퇴진한 강경식씨가 아니더라도 대통령이 오늘의 위기를 정확히 예견하여 우리가 치루어야 하는 대가를 지난해 초에라도 말했더라면 우리는 오늘의 위기를 피할 수 있었던가를 자문해 볼 일이다.

이재선 〈홍익대교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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