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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 이상 겪은 김정일 남한 국상 고려할 여유 없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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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북한이 전직 대통령의 서거로 남한 전체가 사실상 국상(國喪)을 치르는 기간에 2차 핵실험을 강행했다. 충격에 빠진 남한에 “심심한 조의”를 표명한 직후 핵실험으로 한반도 위기를 고조시켰다. 전형적인 ‘성동격서’ 행보다. 이날 새벽 북한 매체들이 조전을 보도하며 예의를 갖추는 듯했지만 북한의 속내는 4시간 후 핵실험으로 확인됐다.

대북 전문가들은 특히 이번 2차 핵실험은 그간 ‘동양적 윤리’를 강조하며 남한 정부를 비난해 왔던 북한의 태도와도 모순된다고 지적했다. 북한은 1994년 김일성 주석 사망 때 당시 김영삼 정부가 전군에 비상경계령을 내린 것을 놓고 두고두고 비난해 왔다. 2000년 6·15 1차 남북 정상회담 직전 당시 임동원 국정원장이 사전 조율 차원에서 방북했을 때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임 원장에게 “김 주석께서 서거하셨을 때 남측은 국상 중이던 우리에게 적대적인 위협 조치를 취했다” 고 말했다.

북한이 국상 중 핵실험을 실시한 이유는 뭘까. 전문가들 사이에선 ‘북한 시간표론’ ‘남북 관계 배제론’이 나온다. 정영태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북한은 이미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이전에 핵실험, 플루토늄 추출, 대륙간탄도탄(ICBM) 발사 실험 등의 일정표를 만들어 놨을 것”이라며 “남북 관계 때문에 이런 시간표를 결코 미루지는 않는다는 과시”라고 지적했다.

남주홍 경기대 교수는 “지난해 건강 이상을 겪은 김 위원장이 강성대국 건설과 후계 구축, 권력 통제를 위해 ‘동양적 정서’까지 고려할 여유가 없 다는 방증”이라고 분석했다. 북한의 내부 요인 작용론이다.

◆미국 ‘메모리얼 데이’ 연휴 겨냥설도=북한은 2006년 미국의 독립기념일(7월 4일)에 맞춰 7월 5일(한국시간) 대포동 2호를 쏘며 효과를 극대화하려고 시도했다. 이번 2차 핵실험은 미국의 현충일 격인 ‘메모리얼 데이(Memorial Day)’ 연휴 기간에 강행됐다. 그래서 북한은 미국 전역에서 조기를 걸고 전사자를 추모하는 기간에 핵실험을 실시, 주목도를 높이며 ‘핵 보유 의지’를 선명히 보여주려 한 것 아니냐는 해석도 나온다.

채병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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