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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농부 이름 딴 국제학회상 탄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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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경북 영천에 사는 한 농부의 이름을 딴 국제학회상이 제정됐다.

아시아사회심리학회는 지난달 뉴질랜드 웰링턴에서 열린 제6차 총회에서 '박정헌 소장학자상(Jung-Heun Park Young Scholar Award)'의 첫 시상식을 열었다. 이 학회는 이에 앞서 '평범한 한국 소시민의 훌륭한 정신과 행동을 평가한다"면서 이 상의 제정안을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

영광의 주인공은 영천군 고경면에서 50여 년 동안 사과 농사를 지어 온 박정헌(93.사진)씨. 그는 2003년 여름, 맏딸인 박영신(46) 인하대 교수(교육학과)에게 "전공분야의 발전을 위해 쓰라"며 1000만원을 건네주었다.

이후 박 교수는 필리핀에서 열린 국제학회에 참석해 동료 학자들과 의논한 끝에 자기 아버지의 이름을 딴 상을 제정해 줄 것을 학회에 건의했다. 기금 액수도 많지 않고 국제적으로 알려진 인물도 아니지만 살아온 발자취가 남다른 분이라는 설명과 함께.

평남 평원이 고향인 박씨는 영천에 정착한 이래 이웃들에게 많은 선행을 베풀었다. 돈이 없어 상급 학교에 진학하지 못하는 아이들이 있으면 빠짐없이 장학금을 주어 공부를 계속하게 했다. 홀로 된 노인들을 보살피는 데도 앞장섰다. 얼마 전에는 1800여 평의 야산을 형편이 어려운 실향민들의 묘지로 제공하기도 했다.

상세한 사연을 전해들은 아시아사회심리학회는 '박정헌 소장학자상'을 제정키로 결정했다. 제1회 수상자로 선정된 홍콩 중문대의 실비아 첸 박사는 "학식이 높은 학자나 재산을 많이 모은 기업가가 아니라 농사를 지으며 평생을 성실하게 살아온 분의 이름을 딴 상을 받으니 더 기쁘다"고 수상소감을 밝혔다.

뒤늦게 상 제정 소식을 들은 박씨는 "우리 딸이 애비를 너무 과하게 대접한 것 같다"며 흐뭇해 했다.

인천=정기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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