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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북풍과 또하나의 IMF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온 나라가 북풍 (北風) 으로 들끓고 있다.

동남아의 외환위기로 인한 동남풍이 불어와 온 나라를 경제위기로 몰아넣은 IMF사태가 벌어진 지 4개월만에, 이제는 북풍으로 불리는 국가정보운용 실패로 인한 또 하나의 IMF (Information Management Failure) 사태가 온 나라를 위기로 몰아넣고 있다.

경제위기가 우리 경제 운용의 실패 때문에 생긴 것이라면 정보위기도 우리 국가의 정보운용 실패로 생긴 것이다.

따라서 경제위기 극복 못지 않게 정보위기 극복 또한 중요하며 정보위기의 극복 없이 경제위기 극복은 온전할 수 없다.

사실 우리의 국가정보체제를 선진화하는 데 걸림돌이 되는 것은 북풍을 가능케 한 고질적인 우리의 정보태도와 문화다.

흔히들 우리나라는 정보유입보다는 정보유출이 많은 나라라고 한다.

아는 것이 있으면 비밀 여부를 가리지 않고 말한다.

이것은 보편적인 현상이다.

일부 정치인들은 비밀정보임에도 불구하고 누설을 하지 않는가.

정보활용에 있어 공적인 목적보다는 사적인 목적을 우선한다.

자기네 집단 .정당.정권을 위해 활용하는 것이 다반사다.

업무상 정작 필요한 사람에게는 주지 않으면서 지연 혈연 학연이 같은 사람에게는 무슨 정보든지 준다.

개발정보.해외정보.정치정보 가릴 것이 없다.

정보공유보다는 정보독점을 원한다.

사실 국가기관의 정보는 국가의 공적자산이다.

유관기관에 전파해 국가문제를 공동으로 해결하기 위해 활용해야 하고, 일정시기가 지나면 국민에게 공개해야 하는데, 대부분의 정보는 대통령과 기관장에게 보고용으로만 사용되고 있다.

또한 다른나라 정보기관과는 1년에 몇 번씩 회의를 해도 국내 정보기관간에는 횡적인 교류회의가 드물다.

결국 장님 코끼리 만지기 식의 왜곡된 정보가 오랜 기간 보존되고 전수된다.

이러한 정보문화를 그대로 두고 북풍수사만으로 정보위기 극복이 가능할까. 21세기를 앞둔 정보화의 시대에 구태의연한 정보문화가 제도적으로 개혁되지 못한다면 우리는 영영 시대적 낙후를 면치 못할 것이다.

정치권.북한.국가최고 정보기관이 관련된 북풍말고도, 사방에서 불어닥치는 국가간의 무한경쟁이라는 태풍이 경제위기에 빠진 한국을 뒤흔들고 있다.

이에 대비하는 길은 우리의 국가정보체제를 제도적으로 개혁하는 길이다.

그러나 제도개혁은 몇몇 소수인의 지혜로는 불가능하다.

다당제하의 복잡한 정치현실과 문제의 뿌리깊음을 감안할 때 국회 정보위 산하에 초당적 정보개혁자문위원회의 출범이 시급하다.

86년 이란 콘트라 스캔들이 미국을 절대절명의 위기로 몰아갔을 때, 레이건은 미국의 CIA와 국가안보회의의 개선을 위해 초당적으로 존 타워 상원의원을 중심으로 관련 전문가.관료.정치인을 포함시켜 타워위원회를 만들었다.

4개월 여의 조사 끝에 내놓은 국가 안보정책결정체계와 정보체계의 개선방안은 아직도 그 효력이 유효하다.

그래서 김대중 (金大中) 대통령이 신임하는 정보전문 정치인을 위원장으로 전문가.정치인.국가정보부문 원로와 경제정보 전문가를 위원으로 한 초당적 정보개혁자문위원회를 설치하고 그 위원회와 국회 정보위원회가 공동으로 비공개 청문회를 개최해 3개월 정도의 시간을 갖고 정보기관 개선방안을 마련, 그것에 근거해 국가정보기관을 개혁함이 어떨까 생각한다.

정보기관의 개혁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우리 정보문화의 일대 변혁이 필수적인 만큼 종합적인 진단과 처방이 나오지 않고서는 북풍은 분명 일과성으로 끝날 수도 있을 것이다.

아울러 현재 상설화하고 있는 국가안보회의에서 통일된 국가이익과 목표, 국가안보전략을 정하고 국가정보기관의 업무를 조정하게 되면 안기부 개혁은 더욱 큰 진전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대통령 주재 국가안보회의에서 주요한 사안을 다룰 때 여.야당의 관련 중진을 동석시켜 국가안보와 정보를 논의하게 되면 자연히 정보기관의 투명성은 제도화할 것이다.

한용섭〈국방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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