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숨 그리고 분노 … 연평도 꽃게 어장 가보니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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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해역에 몰래 들어와 꽃게 싹쓸이 조업을 일삼는 중국 어선들이 연평도 앞바다의 NLL 경계선 북쪽해상에 대기하고 있다. 연평도 북쪽 해안 철조망 너머로 북한 황해도 지역이 보인다. 최정동 기자

2일 오후 2시 인천시 옹진군 연평도 북쪽 꽃게 어장. 중국 어선 100여 척이 북방한계선(NLL) 경계선에 새까맣게 몰려 싹쓸이 조업을 하고 있었다. 순간 중국 어선 한 척이 NLL 경계선 남쪽으로 내려오려 하자 해군과 해경 경비함정이 쏜살같이 다가갔다. 경비함정이 접근하자 중국 어선은 재빨리 북쪽으로 방향을 틀어 도주했다.

최근 중국 어선들이 거의 하루도 빠지지 않고 연평도 북쪽 해상에 떼지어 출현하고 있다. 많게는 하루 160척까지 몰려든다. 인근 백령도 북쪽 해상까지 합하면 300척에 이른다.

때문에 본격적인 꽃게 철을 맞은 연평도 어민들은 앞으로 얼마나 많은 중국 어선이 몰려올지 걱정이 태산 같다.

어민들은 "북쪽에서 싹쓸이 조업을 일삼는 중국 어선 때문에 꽃게 씨가 말라버렸다"고 하소연한다. 지난해부터 꽃게잡이를 나가면 빈 그물만 건지고 돌아오는 날이 허다하다는 것이다.

실제로 이날 오전 꽃게잡이에 나선 연평도 어선 53척 중 10여 척이 그물질을 두 차례쯤 해도 꽃게가 나오지 않자 일찍 연평도 당섬 부두로 귀항했다. 선혜호(9t급) 선장 장익선(40)씨는 멀리 북측 해역에 보이는 중국 어선들을 원망 어린 시선으로 바라보며 "북쪽에서 내려오는 꽃게를 잡아야 하는데 저기서 딱 버티고 싹쓸이해버리는데 잡을 게 뭐 있겠느냐"며 울분을 터뜨렸다.

그는 "한번 출어할 때마다 드럼당 10만원 하는 기름을 두 드럼가량 쓰는데 빈 배로 돌아온다"며 "연평도에서 잡은 꽃게를 옹진수협 공판장에 위탁한 게 언제인지 모르겠다"고 한숨을 쉬었다.

광미 8호 선장 오재식(50)씨는 "잘나갈 때는 한번 조업에 500~600㎏씩 잡아올린 적도 있지만 지난해부터 꽃게가 거의 잡히지 않고 있다"며 "바로 지척에 떼로 몰려 있는 중국 어선들을 볼 때마다 달려가 들이받고 싶은 게 솔직한 심정"이라고 말했다.

연평도 어민들이 1일 NLL 경계선을 침범해 우리 해역에서 불법 조업 중이던 중국 어선 네 척을 나포해 붙잡아둔 것도 더 이상 중국 어선들에 꽃게를 빼앗길 수 없다는 절박한 심정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연평도 어민들은 2일 당섬 부두 앞에 30여 척의 어선을 세워놓고 정부 대책을 촉구하는 해상 시위를 벌였다. 최율 연평도 어민회장은 "어장을 북쪽으로 더 확장해주고 야간 조업도 허용해 주도록 해양수산부 등에 건의하고 있지만 중국과 외교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방안을 찾아보겠다는 말만 되풀이할 뿐"이라고 말했다.

연평도=정영진 기자 <chung@joongang.co.kr>
사진=최정동 기자 <choijd@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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