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봄의 작가]5월 베를린 초연작품 몰두 구본우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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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봄은 새로운 시작이며 기다림이다.

풍성한 가을걷이를 꿈꾸며 씨앗을 뿌리는 농부의 심정으로 오선지 위에 '콩나물' 을 심는 작곡가 구본우 (40.성신여대) 교수의 작업실에도 봄기운이 완연하다.

具씨는 오는 5월24일 베를린 '세계문화의 집' 에서 열리는 '한국주간' 에서 초연할 '가야금과 현악3중주를 위한 작품' 의 막바지 작업에 몰두하고 있다.

국악기와 양악기의 앙상블은 지금까지 많은 국내 작곡가들이 시도해 온 작업이다.

그러나 具씨는 악기 특유의 민족적 색채를 고집하지 않고 소리의 원형을 보여주기 위해 연주공간의 잔향까지 포함해 2초 정도의 짧은 소리에 집중적으로 매달리고 있다.

서양 현악기에 피치카토를 많이 사용해 가야금과 동질감을 느낄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연세대.슈트트가르트 음대를 졸업한 뒤 잠시 들른다는 생각으로 찾았던 고국생활도 벌써 8년째. 국내에 들어오면 무조건 삼류 취급하는 풍토가 얄밉지만 이젠 '작곡가의 천국' 이라는 독일로 돌아갈 생각은 추호도 없다.

지난 2월 한국페스티발앙상블 위촉으로 초연한 4대의 첼로 주자를 위한 작품의 제목 '희망없는 희망이 단지 꿈꾸는…' 은 그의 심경을 잘 말해준다.

청중은 물론 연주자조차도 신작 (新作)에 별로 관심을 보이지 않는 한국에서 작곡가로 살아가기는 무척 힘든다.

그는 독일이나 일본에서 작품 위촉이 더 많이 들어온다며 '자랑 아닌 자랑' 을 늘어놓지만 '위촉작품' 만 쓴다면 월급쟁이나 다를 게 뭐냐며 반문한다.

"돈이 없으면 뭔가 아쉬움이 남아 문화를 찾아다니지 않을까요. 우리가 IMF를 '더 아프게' 느끼는 것은 문화가 일상에 뿌리를 내리지 못한데다 그동안 돈이 유일한 희망이었기 때문이죠. 저녁이면 언제든지 음악회에 갈 수 있다고 생각해보세요. IMF 이후 음악회 입장료도 내리지 않았습니까. " 정장보다 청바지 차림을 더 좋아하는 그는 청바지가 수십 벌에 이른다.

옷차림부터 '주변인' 의 모습이다.

고 (故) 구자운 (具滋雲) 시인의 둘째 아들로 태어난 그는 봄이 되면 어릴 때 식객 (食客) 으로 자기 집을 드나들던 고 (故) 천상병 (千祥丙) 시인과 함께 우이동 계곡으로 소풍가던 추억을 떠올린다.

具씨가 가곡으로 작품화한 '귀천 (歸天)' 의 마지막 부분은 바로 자기 이야기라고 한다.

그는 또 일본인 피아니스트 겸 작곡가인 다카하시 유지 (60) 도 자주 떠올린다.

유지는 일본서 공원 등지에서 광주항쟁 비디오를 보여주며 항의집회를 열면서 배경음악으로 '새야 새야' 를 주제로 한 변주곡을 직접 연주했던 인물. 5월을 앞두고 具씨가 도쿄에서 반갑게 만났던 유지가 보고 싶어지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이장직 음악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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