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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교에 깃든 '예의 언어' 캐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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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 동양철학이 바탕에 깔린 두 권의 언론학 책을 낸 김정탁 교수. [김태성 기자]

"굿바이, 구텐베르크! " 새천년을 맞는 지난 2000년 언론학자 김정탁(성균관대)교수는 그렇게 선언했다. 펴낸 책이름도 '굿바이 구텐베르크'. 미디어 전공학자가 미디어를 움직이는 언어와 말을 내동댕이친 것이다. "언어가 필요 없다"(不立文字)는 선불교의 절간에 들어가나 싶었던 그가 돌아왔다. 이론서 '노장.공맹 그리고 맥루한까지-의사소통 사상'(월간 넥스트.유민문화총서2).'禮(예) & 藝(예)'(한울)를 양 손에 든 채.

두 연구서는 구텐베르크 인쇄술 발명 이후 펼쳐진 서구 이성중심주의. 합리주의와 작별한 이후 한국적 의사소통의 새로운 철학적 토대를 닦는 작업이다. 방식은 노장(老莊)사상.유교에 켜켜이 들어있는 커뮤니케이션 사상의 금맥을 캐 현대 언론학의 옷을 입히는 작업. 따라서 분류컨대 '언론 형이상학' 쪽이다.

"구텐베르크 인쇄술이란 기독교.자본주의.민족국가를 가능케 하는 핵심이었다. 이 때문에 서구 언론들은 지난 1000년 최고의 발명품을 인쇄술이라고들 말해왔다. 서양 근대는 한마디로 '구텐베르크의 은하계'인 셈이다. 문제는 그 결과 현대인은 인쇄된 책을 통해서 문명화의 길을 달려왔지만, 그들에게는 따뜻한 감성을 잃어버린 차가운 이성만 남아있다."('노장.공맹 … ')

즉 김 교수는 지난 300년 서구의 로고스(말) 중심주의, 여기에 토대를 둔 매체기술관.의사소통 이론에 의문을 던진다. 그건 지금까지의 대량소통 방식과 또 달리 휴대전화.인터넷 등 개인 대 개인의 커뮤니케이션 등장으로 의사소통의 질과 양이 급변하는 국면 전환 때문이기도 하다. 이 판에 의사소통의 철학 전면 재구성은 더욱 절실해졌다. 노자 '도덕경'의 첫 문장을 보자. "도를 도라고 이름 붙이면 벌써 도가 아니고…". 본디 언어란 근본적 한계가 있다는 규정이다.

거기까지는 상식. 김 교수는 유교에 각별한 주목을 한다. 공맹사상은 정치사상이기도 하지만, 특히 정명(正名)사상이 핵심이라는 게 그의 견해다. 정명사상은 올바른 언어사용.의사소통이 올바른 정치의 필수라고 강조하는 생각. 입 달린 사람 모두 한마디씩 하는 '언어의 혼란'(백가쟁명)의 춘추전국 시대에 공자 커뮤니케이션 이론이 등장한 것이다.('禮 & 藝' 247쪽)

따라서 동양의 커뮤니케이션이란 화려한 말보다는 내용과 질에 우선을 뒀고, 은유적이고 시적인 언어를 중시했다. 그것을 김 교수는 '예(禮)에 입각한 의사소통'이라고 작명했다. 관심 가는 것은 그의 연구서가 정치권.인터넷 공간에서 벌어지는 한국사회 혼란에 좋은 처방일 수 있다는 점이다. 김 교수는 "예의 커뮤니케이션이란 언어로 모든 것을 해결하지 말라는 경고의 말이다. 토해낸 언어에 현미경을 들이대 시비를 벌이는 어리석음 대신 절제된 언어가 중요하다는 판단이다"라고 말했다.

미 MIT 미디어연구소의 예를 봐도 요즘 인문학 중 가장 많은 연구비가 몰리는 것이 매체이론 쪽. 전 세계적으로 발명특허 받는 기술의 절반도 매체기술이다. 이때 김 교수의 '한국적 언론학'정초(定礎)작업은 높이 평가받을 만하다.

조우석 기자
사진=김태성 기자<ts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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