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아라리 난장 61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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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봉환의 말에 일리가 있다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그는 힐끗 철규를 돌아다보았다.

두 사람의 입씨름이 시작되고부터 철규는 그들과는 먼발치에 비켜서서 장꾼들과 흥정에 여념이 없는 것처럼 행동하고 있었다.

그가 상대하고 있는 원매자 (願買者) 는 울긋불긋한 등산복 차림의 두 여자였다.

사십대 초반의 나이로 보이는 여자들은, 진눈깨비에 펄럭거리고 있는 현수막의 시구를 꼼꼼하게 읽어본 다음, 몸집이 작은 동지태 (冬至太) 를 뒤적이며 가격은 묻지 않고 동지태로 부르는 연유를 물었다.

"이 명태가 모양은 원양태보다 작지만, 동지를 전후해서 우리나라 동해안 주문진으로부터 함경북도 청진 사이에서 알을 슬어 성장하는 명태지요. 맛도 원양태보단 진하고 육질도 단단한 편입니다.

이 동지태에 해독제가 들어 있다는 것은 사람들이 잘 모르고 있지요. 독사에 물렸을 때, 농약에 중독되었을 때, 지네에게 물렸을 때, 미친 개에게 물렸을 때는 물론이고 공해까지 풀어주는 신비스런 해독제가 들어 있어요. 이 동지태가 강한 해독제를 지니고 있는 까닭도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지구상에 분야를 설정하면, 간동 (艮東 : 生氣之方) 분야에 속하는데요. 그 중에서도 가장 핵심 부위에 위치하고 있다는 거예요. 그래서 동지가 지나게 되면, 수기 (水氣)가 약화된다 해서 반드시 입동후 동지 (冬至) 를 중심으로 십오일 전후에 잡힌 것을 약용으로 쓰고 있습니다.

낚시로 잡은 것은 낚시태, 그리고 그물로 잡은 것은 망태라고 하는데, 저희들이 팔고 있는 것은 망태지요. "

"제사에 반드시 북어를 쓰는 까닭이 뭡니까?" "제사에도 꼭 쓰지만, 입택 (入宅) 할 때 반드시 북어를 실타래에 감아서 현관문에 걸어놓는 것을 보셨을 거예요. 제사상에 명태를 올리는 까닭은 명태가 건조되었더라도 머리와 눈이나 몸통을 온전하게 보전하고 있기 때문에 사람을 대신한다는 뜻이 담겨 있지요. 새로 구입한 집터가 세다 해서 마당에다 몰래 명태를 묻어두거나, 묏자리를 잡은 후에 가묘를 쓸 때도 명태를 묻어두는 풍습은 오래전부터 있어 왔지요. 입택할 때 현관에다 명태를 달아두는 것도 사람에게 다가올지도 모를 재액을 막아달라는 주술관념이 내재되어 있다고 하지요. 이 황태를 댁으로 들여가시면, 우선 껍질 부위만 물로 축여서 비닐봉지나 보자기 같은 것으로 한두시간 정도 싸둡니다.

물기가 속살까지 촉촉하게 배었다 싶으면, 등쪽으로 세워 방망이나 망치로 자근자근 두들겨줍니다.

그런 다음에 껍질을 벗기고 반으로 갈라서 가시를 깨끗하게 발라낸 뒤에 다시 물에 잠기게 적셔낸 다음 물기를 꼭 짜줍니다.

비로소 양념장에 재워두었다가 끼니 때마다 오븐이나 팬에 살짝 구워내면, 맛 좋은 황태불고기를 드실 수 있습니다."

침 삼키는 시늉도 모자라 손짓 발짓으로 요리강습까지 해주었는데도 듣고 있던 두 여자는 철규의 얼굴을 사뭇 미심쩍은 시선으로 빤히 바라보며 서 있다가 한마디 퉁겼다.

"아저씨 설명대로라면, 명태는 귀신붙은 생선이네요? 귀신붙은 생선을 칼로 싹둑 잘라서 구워 먹기가 어쩐지 거북하다는 느낌이 들지 않나요?" "명태에 대한 우리의 전통적인 민속이 그렇다는 것이지, 귀신이 붙었다고 말씀하신다면, 한여름 날 마을 앞에 있는 당나무 그늘에 쉬어가는 것도 거북한 일이 아니겠어요?" "말하는 걸 들어보니 명태장수 하실 분이 아닌 것 같은데?" "저요? 건어물 장수로 장터에 나선 지 올해로 꼬박 육년째가 됐는데, 명태장수같지 않다면 섭섭한 말씀입니다.

자기가 팔고 있는 상품에 대한 지식을 조금이나마 터득하고 있다는 것을 이상하게 생각하진 마세요. 오히려 두 분이 근처에서 오신 장꾼 같진 않은데요?" "우린 애들 데리고 등산 왔다가 장이 선다길래 구경 나와봤어요. " 그러나 두 여자는 그토록 열심히 설명을 해주었는데도 코다리명태를 사가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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