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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가 끊긴 시대, 이야기를 잇는 할아버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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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인사동 거리’와 ‘인사동 골목’ 중 어떤 표현이 더 끌리는가. 에세이스트 원종성(72) ‘티센크루프동양엘리베이터’ 회장은 “당연히 ‘인사동 골목’이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는 신작 에세이집 『인사동 골목은 좁아야지』(피쉬)에 손때 묻은 ‘골목’에서 현대식 건물이 차지한 ‘거리’로 바뀌어가는 인사동에 대한 아쉬움을 담았다.

원종성 회장은 “인사동의 골목 풍경을 유지하려면 화려한 ‘숍’들이 길가로 나서지 말았으면 좋겠다. 구멍가게들이 올망졸망 있어야 들여다보는 재미가 있다”고 말했다.


◆인사동 붙박이 된 회장님=워낙 인사동을 좋아하던 그는 5년 전부터 그곳 붙박이가 됐다. 자식들에게 사업을 물려주고 자신이 주간으로 있는 ‘월간 에세이’ 사무실을 인사동으로 옮기면서부터다. 그전엔 회장실 옆에 편집실을 뒀다. 기업가 취미라 치부할 수준이 아니었다. 잡지는 22년째 결호 없이 발행됐다. 군(軍)에 들어가는 3만5000부를 포함해 발행부수 7만 부에 이른다. 원 회장의 글 역시 중·고교 교과서에 실릴 정도로 품격을 인정받는다. 1990년대 초 출간한 『향 싼 종이에선 향내 나고, 생선 싼 종이에선 비린내 난다』는 지금껏 30만 부가 넘게 팔렸다.

그러나 ‘회장님’에서 문예지 주간으로 온전히 변신한 첫 3년은 약간 우울했단다. 걸려오는 전화는 점점 줄고, 밥 먹자는 사람도 없었다. “늙은이가 혼자 들어서면 식당 주인들도 안 좋아하니, 사무실에서 햄버거를 시켜 먹기도 하고…. 일찌감치 인사동 골목을 오가다 아는 사람을 만나면 기분 좋은 날이죠.” 그러다 보니 절로 골목을 헤집게 됐다.

“인사동 뒷골목 풍경이 정말 재미있어요. 그런 곳이 바뀌어가는 게 애처로워요. 평당 5000만원짜리 땅에서 화랑이 버틸 수가 없죠. 국가가 지원해서라도 지켜야 할 곳인데….”

◆에세이 잡지 일은 손녀에게 대물림=원종성 회장은 “인사동을 거닐다 보니 노루가 회향하듯 어린 시절 기억이 떠오르더라”고 했다. 강원도 산골에서 보낸 유년의 추억담은 생생하기 그지없다.

“겨울의 휘파람새가 먹먹한 코를 풀듯이 내는 소리로 적막한 산중을 가르면 그때는 분명 겨울이다. 그렇게 울었던 휘파람새가 어느 날 갑자기 호들갑스럽게 목청을 높이면 이미 봄은 와서 신음하는 나뭇가지에다 초록을 약속하면서 노니는 것이다.”(‘소리로 오는 봄’에서)

골목대장을 따라 산밤과 도토리를 줍고 밀·감자 서리를 하던 기억도 손에 잡힐 듯 그렸다.

“비 오는 날 알몸에 진흙을 바르고 참외밭에 숨어들어 주인이 지키고 앉은 원두막 사다리부터 치우죠. 그럼 주인 양반이 소리쳐요. ‘야 이놈들아, 얼굴에 문질러봐서 거칠거칠한 건 두고 반들반들한 것만 따 먹어라!’”

자연의 품안에서 식량을 구해 맛있게 나누던 그때는 “가난했다지만 가난을 느끼지 못하던 시절”이었다. 지난 5년간 그가 써낸 글은 인사동 골목이든, 유년기 추억이든 그렇게 “망각 속에 숨어 있는 시간”의 골목을 찾아 나선 탐사기다.

“할아버지 할머니의 이야기를 들을 수 없는 핵가족 시대라 이야기의 맥이 끊어져버렸어요. 기억을 전해주는 게 그래서 중요하죠.”

‘월간 에세이’를 지금껏 이어온 것도 “에세이 하나쯤은 지켜야 한다”는 고집스러움 때문이다. “막내가 ‘에세이 만큼 정성을 들이면 동양 엘리베이터 3개는 더 만들겠어요’하더군요. 큰아들은 ‘20년이 넘었는데 하실 만큼 하신 거 아닙니까’라고 묻고요. 난 100년 가는 잡지를 만들고 싶은데 말이죠.”

책 읽기 좋아하는 9살배기 손녀 예빈이는 다르단다. “아들도 딸도 골치 아프다며 마다하는데, 어린 손녀가 하겠대요. 거기에 희망을 걸고 있어요.”

글·사진=이경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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