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유가 내리면 주행세 올려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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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우리나라 물류 (物流) 비용은 국내총생산 (GNP) 의 무려 17%나 된다.

이는 국토가 광대한 미국이나 또 경쟁국 일본에 비해도 2배 가량 더 많이 부담하는 셈이다.

높은 물류비는 수출가격을 그만큼 추가로 올릴 수밖에 없다.

그 결과 우리나라 상품의 가격경쟁력은 상실되고 국민생활은 불편해지며 또한 삶의 질도 그만큼 떨어지게 된다.

이렇게 높은 물류비의 4분의 3은 주로 교통지체로 인한 과다한 수송비 부담 때문이다.

다행히 지난 연말부터 '나 홀로' 차량이 줄어 서울시내 교통사정이 좋아졌다고 한다.

국제통화기금 (IMF) 시대에 씀씀이도 줄여야 하고 달러값의 상승으로 국내 유가가 올라 국민들이 자가용 운행을 자제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최근 국제 원유가격의 하락으로 인한 국내 기름값의 연이은 인하로 다시 교통량이 많아지는 경향이 있다.

이러한 현상은 한마디로 우리 국민들이 가격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음을 방증하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나라 물류 애로를 타개하는 실마리는 가격기능을 활용해 생산에 직결되지 않는 교통수요를 억제하는 데 달려 있다고 보인다.

그동안 정부는 기업의 물류비용을 줄이기 위해 '하드웨어' 를 확충하는 데 역점을 두어 왔다.

물류시설 확충을 위한 사회간접자본 (SOC) 시설 투자를 늘려 공급능력을 확충하고 또한 물류시설의 이용률을 향상시키기 위해 아직은 초보단계에 불과하지만 물류정보 시스템을 개선하는 등 소프트웨어 측면의 개선도 시도하고 있다.

그러나 SOC 시설은 재정부담뿐 아니라 시설공사 자체가 상당히 오랜 기간을 요하기 때문에 단기간 투자만으로 물류 애로를 획기적으로 극복하는 데는 역부족이다. 따라서 정책의 핵심은 불요.불급한 수송 수요를 억제할 수 있는 가격정책에 초점을 맞춰야 할 것이다.

조세정책을 통해 에너지 가격을 조정하는 방법이다.

그렇게 되면 자가용이 상대적으로 편리해도 그만큼 비용부담이 상대적으로 많게 돼 불필요한 자가용 교통수요를 자제하게 될 것이다.

그 결과 교통혼잡은 완화될 것이고 물류효율은 개선될 것이다.

그 구체적 방법은 주행세를 석유소비에 중과 (重課) 하는 것이다.

소비자는 시간.노력.편익.비용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자가용 교통을 이용할지, 아니면 대중교통을 이용할지를 선택하게 될 것이다.

다만,에너지 소비에 주행세를 무차별 부과하는 경우 대중교통이나 생산 기업에는 에너지 비용의 추가 상승을 가져오기 때문에 이러한 에너지 소비에 대해서는 조세 환급제도를 실시하면 된다.

한편 영세 자영업자의 경우 에너지에 부과된 주행세의 감면혜택을 받기 위해서는 자영업자의 부가가치세 자진신고와 연계해 환급 조치한다면 형평성 문제는 해결될 수 있다.

또한 이것은 영세 자영업자들의 성실신고와 연계함으로써 주행세 감면 혜택과 부가가치세 추가부담 사이에서 유리한 쪽을 택할 것이므로 세정의 합리화에도 도움이 되리라 기대된다.

주행세는 바로 SOC투자를 위한 추가재원이 될 것이며 또한 국민의 에너지소비 절약을 유도함으로써 외화를 절약하고 에너지 수입의존도를 낮추게 될 것이고 대기 오염원을 감축함으로써 지구기후협약에 효과적 대응책이 될 수도 있다.

뿐만 아니라 자가용을 많이 굴리는 사람들이 도로.교량 등 SOC 시설을 더 많이 이용하는 만큼 상대적으로 더 많은 세금을 부담할 것이므로 수익자 부담원칙에 부합한다.

또한 그들이 부담한 주행세를 재원으로 해서 버스의 고급화 등 대중교통수단 개선을 위해 쓰이게 될 것이므로 조세의 형평성 원칙에도 맞는다.

이 방안은 그 동안 여러 차례 논의된 적이 있으나 저항이 커 추진하지 못했다.

그러나 오늘의 경제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우리는 허리띠를 졸라매야 한다.

기름 값이 조금 내렸다고 성급히 위기감을 떨쳐 버릴 수는 없다.

최근 국제 원자재 가격이 하락하고 있다.

이때야말로 바로 주행세를 과감히 대폭 상향 조정할 수 있는 적기라고 할 수 있다.

정부의 용단을 기대한다.

황인정〈전 한국개발연구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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