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리뷰]SBS '추적,사건과 사람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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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2면

한국시청자들은 미국의 감방에는 눈이 익어도 한국의 감방은 낯이 설다.

이유인즉 국내TV카메라가 교도소 담장을 넘어간 일이 거의 없기 때문. SBS드라마 '모래시계' 를 비롯, 대부분의 TV속 교도소장면은 이제는 공원으로 용도가 바뀐 옛 서대문구치소에서 촬영한 것이다.

지난 9일 방송된 SBS시사교양프로 '추적, 사건과 사람들' 의 '서울구치소에 수감중인 사형수의 48시간' 편 (사진) 은 재소자들, 특히 사형이 확정된 기결수들의 교도소 안 생활을 시청자들에게 고스란히 공개했다.

확정된 죽음 앞에서 잉여의 삶을 사는 그들의 모습은 세상을 떠들썩하게했던 흉악범시절과 확연히 달라져 있었다.

뒤늦게 세상의 따뜻한 일면을 발견하고, 장기기증을 약속할 만큼 그 세상의 훈훈함에 스스로 온기를 더하려하는 그들의 모습은 시청자들에게 사형제도의 정당성에 대한 의문을 갖게 하기에 충분했다.

제작진이 칭찬받을만한 점은 바로 이 다음에 발견된다.

취재가 불충분한 일부 시사프로들이 흔히 하듯 자신의 원론적인 입장을 진행자의 말로 강변하는 대신, '있는 그대로' 를 보여주려고 애쓴 것이다.

자칫 선정적으로 보일 법한 수위를 조심스레 넘나들면서 재연한 사형집행장면, 여의도 차량질주 사건으로 손자를 잃고도 범인을 용서한 할머니의 인터뷰 등이 그 좋은 예다.

먼저 범인을 찾아가 용서한다고 말을 건네고도, 속병 앓던 며느리가 숨지자 다시 노여움을 이길 수 없었다는 피해자 할머니의 '있는 그대로' 의 말이나, 이번이 마지막일지도 모르는 면회시간 내내 말 한 마디 못하는 살인범 할머니의 '있는 그대로' 의 눈물은 사형제도 존폐논란의 앞뒤에서 헤아려야할 다양한 마음의 상처를 함축적으로 전달했다.

"교도.교화에 대한 시청자인식이 일제시대 수준에 멈춰있다" 는 말로 법무부를 설득, "운좋게" 촬영허가를 받아냈다는 연출자 최창현PD는 "피해자가족들 쪽 이야기를 더 담아내지 못한 것" 을 아쉬움으로 지적한다.

사형제도를 둘러싼 논란을 깊이 있게 파고든 것은 아니었지만, 교도소 담장 안으로 TV카메라의 영역을 확대한 노력은 불완전한 취재.증언을 드라마적 재연과 오락성으로 메우는 사이비다큐프로의 범람 속에서 시청자의 시선을 사로잡을만했다.

이후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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