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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과천이 돌아가게 하라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정부조직 개편과 맞물려 새 정부 출범에 따른 장.차관 인사 및 그에 따른 후속인사가 늦어지면서 관가 (官街)가 일손을 놓고 있다.

뿐만 아니라 정치권도 총리인준 문제를 둘러싸고 경색정국으로 아까운 시간을 낭비하고 있다.

물론 선거에 의한 야당의 첫 집권이기 때문에 그야말로 권력의 중심이 이동하는데 따른 충격이 작을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더라도 이런 분위기 때문에 온 나라가 금모으기와 같이 절박한 심정으로 국난을 극복하자고 동참한 기억은 벌써 퇴색했다.

경제위기에 대한 긴장감은 사라지고 소비가 다시 늘며 안이하거나 경우에 따라서는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누군가 해결해 주겠지 하는 느슨한 분위기마저 나타나고 있다.

그동안 여야 정권교체의 경험이 있었더라면 대통령과 집권층의 인사와는 별도로 경제도 시장을 중심으로 자생적으로 움직일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우리의 경우는 그동안 경제에 정부의 입김이 워낙 거셌던 데다 대부분의 조직에서 특정지역을 중심으로 편중됐던 인사를 '판갈이' 하는데 따른 충격이 크게 나타나고 있다.

특히 실무 후속인사가 매듭지어지지 않은 탓에 은행이나 기업은 눈치만 보고 있는 실정이다.

집권층과 관가의 중심이 흔들리다 보니 중요한 경제결정이 뒤로 미뤄지고 특히 금융부문과 기업부문의 구조조정이 진전되지 못하고 있다.

때문에 유망한 국내기업을 인수.합병 (M&A) 하거나 투자하려고 국내에 이미 들어와 있거나 진출의사가 있는 외국 기업도 아직은 너무 불확실성이 많다고 보고 투자를 망설이는 형편이다.

과연 지금 우리가 정당간 투쟁이나 하고 과거지향적인 한풀이나 해도 좋을 정도로 경제상황이 호전됐는가.

우리만 오히려 어떻게 되겠지 하는 안이한 심정일 뿐 외국에서는 아직도 엄청난 고통이 뒤따를 것이기 때문에 전혀 안심할 상황이 아니라고 경고하고 있다.

최근 무디스는 우리의 신용등급을 조정하기에는 아직 때가 이르고 한국 경제는 이제 간신히 중환자실에서 나왔을 뿐이며 이제부터 고통스런 치료를 받아야 한다고 경고한 바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는 요즘 새 정부 출범 전보다 오히려 급속하게 사태를 낙관하는 느슨한 분위기로 선회하고 있다.

그 배경에는 '3월대란설' 이니' '제2의 위기' 니 하면서 걱정했던 상황이 일본의 공공자금 투입결정으로 비교적 쉽게 넘어간 것도 작용했다.

역설적이지만 이는 사태를 대국적으로 볼 때 잘된 일만은 아니다.

지난 1월 현재 우리의 총대외지급부담 규모는 1천5백12억달러며 환율도 너무 높고 고금리는 기업의 목줄을 죄고 있다.

어느 것 하나 개선된 것이 없고 사태를 호전시키기 위한 금융부문의 구조조정도 눈치만 보고 시간벌기에 열중이다.

기업의 구조조정도 마찬가지다.

그렇게 힘들여 사회적 합의라는 과정을 통해 고용조정 가능성을 열어 줬으나 기업은 정리해고를 포함한 구조조정에 나설 태세가 덜 돼 있다.

정부의 대기업개혁 방향도 아직 확실치 않고 은행을 통한 기업의 재무구조개선이 과연 은행개혁 없이 가능할는지도 분명치 않다.

그러다 보니 기업의 구조조정이 핵심을 벗어난 기조실 폐지나 기업수 줄이기와 같은 곁가지로 집약되고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핵심과제는 제대로 돌아가지도 못하고 있다.

과천 (果川) 의 경제부처가 시장에 간섭을 안할수록 체질은 강화될 것이다.

다만 이제까지의 관성과 규제 때문에 우선 과천이 제대로 돌아가야 한다.

과도기적으로 당장은 기능을 하게끔 빨리 인사를 매듭짓고 심기일전해 경제문제에 매달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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