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자격시험까지 '지역할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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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국가고시 합격자를 지역별 인구비례로 뽑는 것을 골자로 한 '국가 인재의 지역간 균등 등용 촉진법안' 이 여야의원 45명의 공동발의로 국회에 제출됐다.

서울.지방간의 심각한 불균형 발전이 인재의 잘못된 지역배분에 있으므로 지역감정을 해소하고 수도권 인구집중을 막아 균형적인 지역발전을 꾀한다는 것이 입법 취지다.

전국을 10개 시.도 (市道) 별 권역으로 나눠 사법.군법무관 시험, 행정.외무.기술.입법.법원행정 고시와 공인회계사.변리사 시험 등 국가가 주관하는 9개 시험의 선발인원을 인구비례로 할당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같은 법 제정은 신중해야 한다.

우선 인재의 지역할당제는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평등권 및 기회균등의 원칙에 어긋나 위헌적인 요소가 있다.

우수한 수험생이 몰린 지역은 80점을 맞고도 떨어지고, 그렇지 않은 지역은 70점만 맞아도 합격하는 불평등을 뭐라 설명하겠는가.

특히 사시 (司試) 나 공인회계사.변리사 시험 등은 우리나라의 대표적 자격시험이다.

자격시험은 일정한 수준을 갖춘 사람임을 국가가 인정하는 시험이란 점에서 평등이 생명이고 우열만을 평가하는 임용시험과 다르다.

같은 시험문제로 본 국가자격시험의 커트라인이 지역에 따라 들쭉날쭉하다면 권위나 신뢰의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응시자를 출신대학 소재지 별로 분류하는 방법도 어색하다.

반나절 생활권인 좁은 나라인데다 최근 부쩍 늘어난 지방캠퍼스를 일률적으로 행정구역에 따라 나누는 것도 비합리적이다.

더구나 현실적으로 각급 교육기관.시설이 서울과 수도권에 집중돼 있다는 점도 중요하다.

지역간의 불균형 발전이 인재의 잘못된 지역배분에 있다는 시각은 잘못이다.

인재의 지역편중 현상은 제도의 문제보다 이들을 등용하는 위정자들의 제도운영에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또 지역감정 해소를 위한다는 '인재 지역할당제' 가 오히려 지역구도를 고착화하고 편가르기 등 지역감정을 악화시킬 우려가 있다는 지적도 간과해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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